‘슈트’ 입고 전쟁터로 남성복 기원은 ‘군복’

남동현 롯데백화점 남성패션담당 치프바이어

입력 2019-02-22 03:00 수정 2019-0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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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현의 Man Is

알레그리의 트렌치코트는 기본적인 디테일을 중시하면서도 후드 디테일을 가미해 보다 실용적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느낌을 주면서도 레인코트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 LF 제공
월요일 오전 광화문, 예년보다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차가운 겨울의 느낌은 여전하다. 이른 새벽부터 슈트에 코트 깃을 높이 세운 남성들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각자의 직장으로 향한다. 직장은 전쟁터다. 그 전쟁에 참전하는 용사들이 입은 슈트와 코트는 그들의 갑옷이자 군복일 것이다. 팍팍한 하루, 또 어떻게 다양한 난관을 극복해 나갈 것인가.

이 같은 인상은 코트와 슈트의 기원을 살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슈트와 코트 같은 남성복의 출발은 대부분 군복이었다. 시대가 변해도 ‘전쟁터’의 성격이 조금 달라졌을 뿐, 그 본질은 같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영국군이 시작한 트렌치코트

슈트는 남성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면접부터 프레젠테이션, 중요한 미팅 등의 비즈니스 아워(Bussiness Hour)를 함께 한다. 그 기원은 갑옷이다. 중세시대의 갑옷은 전투에 임할 때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가죽과 금속 소재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인을 방어했다. 전투에서의 호신과 격식을 담은 그 의미가 일상생활로 오면서 같은 소재와 같은 컬러를 활용하여 ‘한 벌’의 형태를 한 복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트렌치코트는 봄, 가을 시즌 최고의 스테디셀러 아이템이다. 캐멀 컬러의 트렌치코트는 해당 계절에 매우 마주치기 쉽다는 의미로 ‘3초 룩’(3초에 한 번씩 볼 수 있다는 의미)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트렌치코트의 유래는 보다 더 군인의 실제 상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영어의 ‘트렌치(Trench)’라는 단어가 바로 ‘참호’를 의미한다. 트렌치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서 긴장감 넘치는 대치 속 전투를 벌이던 영국군 병사들이 방한과 방습을 위해 착용했던 데서 기원한다.

이 군용 레인코트를 영국 육군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생산하기 시작한 업체가 바로 트렌치코트와 체크의 대명사인 ‘버버리(Burberry)’다. 이는 트렌치코트가 이른바 ‘버버리 코트’로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도 트렌치코트에는 군복의 용도로 사용되던 때의 디테일이 남아 있다. 어깨 부분에 덧댄 원단은 소총의 개머리판을 보다 정교하게 밀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허리의 벨트고리는 수류탄을 걸기 위한 용도였던 것이 현재의 클래식한 트렌치코트 디테일의 기원이 됐다.


듀퐁의 셔츠와 타이. 체크 패턴 셔츠에 솔리드 타이를 연출하면서 코디의 세련미를 한 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에스제이듀코 제공
크로아티아 병사가 기원인 넥타이

갤럭시의 스트라이프 소재 네이비 슈트. 전문성과 신뢰감을 상징하는 네이비 컬러와 키가 커 보이는 화이트 핀 스트라이프 패턴이 자신감 있는 남성 스타일을 연출하는데 적합하다. 삼성물산 제공
‘와이셔츠.’ 이것은 서양의 화이트셔츠(White Shirts)가 일본을 통해 국내로 도입되면서 일본식 발음이 명사화된 사례로 ‘셔츠’를 의미한다. 보통 셔츠의 기원을 여성의 블라우스나 고대 그리스의 튜닉 형태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이 셔츠의 출발도 군복이었다. 속옷도 입지 않고 사타구니를 덮어 입는 형태로 설계되었던 군복의 셔츠는 흰 컬러를 통해서 총상을 입은 병사들의 부상 부위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셔츠가 공식 행사 등의 정복 아이템으로 발전됐고 오늘날의 셔츠가 된 것이다.

프랑스어로 넥타이를 ‘크라바트(Cravate)’ 라고 하는데 이 넥타이 또한 크로아티아의 군인들로부터 유래됐다. 크로아티아 병사들은 전쟁에 나갈 때 목에 두르는 특유의 천이 있었다. 이는 가족이나 애인, 친지들이 병사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면서 준 것으로 병사들은 행운의 징표로 매고 있었다. 17세기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매고 있는 것을 프랑스의 왕이었던 루이 14세가 인상 깊게 보고 따라 하기 시작된 것이 넥타이가 확산된 결정적 계기였다. 오늘날까지 넥타이는 클래식한 착장에서의 남성의 멋과 포멀함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카디건과 공군 선글라스도 군대 아이템

미국의 베트남전 보급품에서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이 된 야상(M-65재킷), 1890년대 영국 경기병대의 군복에서 유래된 카디건도 군대에서 생겨난 아이템이다. 공군 조종사의 선글라스와 점퍼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변모한 에이비에이터 선글라스와 항공점퍼 등 군복에서 기능적으로 쓰여 왔던 복식들이 현재의 남성 패션의 기본을 구성하는 근간이 된 수많은 사례가 있다.

비즈니스 현장과 남성복, 과거의 전쟁과 군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과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남성들은 가장 고뇌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빛내기도 한다. 포멀한 슈트와 감각적인 넥타이 차림새가 유난히 빛나 보이는 것은 흡사 승전보를 알리며 의기양양 금의환향하는 장병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남동현 롯데백화점 남성패션담당 치프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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