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자화상, 시대의 자화상

김민 기자

입력 2018-04-24 03:00 수정 2018-04-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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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자화상, 시대의 자화상

서용선 작가의 대형 회화 ‘자화상’(2017년). 거울을 보거나 관객을 의식하는 작가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는 “큰 캔버스에 그리려고 거울을 매어 놓고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은 연극에 가까웠다”고 털어놓았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제공
경기 파주시 헤이리예술마을에 있는 미술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의미 있는 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서용선(67·전 서울대 서양학과 교수) 유근택(53·성신여대 동양학과 교수) 최진욱 작가(62·추계예술대 서양학과 교수)의 자화상을 모은 ‘Trahere 화가의 자화상’을 올해 첫 기획전으로 선보인 것.

해외에서는 독일 게르하르트 리히터나 미국 장미셸 바스키아 등 신표현주의 작가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단색화 열기가 차츰 식어가면서 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세 작가도 단색화나 민중미술에 속하지 않고 구상 작업에 천착해 왔다.

유근택 작가의 최근 자화상 ‘끝에 서 있는’(2018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제공
위태로운 자신을 신경질적 선으로 그려낸 유 작가의 ‘끝에 서 있는’, 무장 탈영병이 주택가에서 사살된 모습에 자신을 대입한 최 작가의 ‘화가와 죽음’은 독특한 기법이나 사회적 소재로 자화상을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는 서 작가 작품 37점, 유 작가 작품 17점, 최 작가 작품 11점이 걸렸는데 작가별로 마련된 전시관을 통해 각자의 조형 언어를 비교해 볼 수 있다. 강성은 학예실장은 “2년 전 유 작가 제안으로 전시가 시작됐다”며 “미술사의 오랜 주제인 자화상을 통해 작가의 자의식에 투영된 사회를 보자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서 작가의 대형 회화와 조각 작품도 공개됐다. 서 작가는 ‘단종’이나 ‘6·25전쟁’ 등을 소재로 그려 역사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해외에 있거나 특별히 그릴 것이 없을 때 자화상을 그리곤 했다”며 매일 스스로를 꾸준히 그려 왔다. 높이 4.8m, 폭 7.5m의 대작 ‘자화상’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엿본 듯한 모습을 다각도로 중첩했다. 통상 표기법과 달리 작업한 모든 날짜를 기재한 것은 자신을 숨김없이 기록하겠다는 의지다.

서 작가의 자화상을 보면 기존 작품 속 사건도 결국은 오늘의 작가를 만든 역사적 재료임이 드러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통해 개인의 관점에서 새롭게 역사를 구성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나를 그리는 것은 세상을 담은 나를 보려는 적극적 행위”라고 밝혔다. 몸과 자연을 분리하는 서구와 달리, 원효 ‘대승기신론’에서 몸이 세상의 일부이자 전체라는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 사상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개인의 신체가 절대적 중심이라는 신자연주의 미학으로도 연결된다.

전시가 열린 ‘아트센터 화이트블럭’도 흥미로운 관람 대상이다. 헤이리 한복판에 유리와 흰 벽으로 반짝이는 이 건물은 2011년 개관 당시 미국 건축가협회(AIA) 디자인상을 받았다. 관장 이수문 대표(70)는 파주와 충남 천안에 예술가 레지던시도 운영 중이다. 그는 “국내 미대 졸업자가 연간 2만 명이지만 10년 후 5%만 전업 작가가 된다”며 “시장이 어렵지만 간섭 없이 최대한 기회의 장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20일까지. 031-992-4400

파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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