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심해의 상어’ 도로 위를 질주하다

바르셀로나=이은택 기자

입력 2018-03-23 03:00 수정 2018-03-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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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신형 CLS 스페인 시승기

심해(深海)에서 깨어난 상어가 몬세라트의 굽이치는 도로를 질주했다. 그르렁거리는 배기음은 고요한 ‘검은 성모상의 절벽’에 메아리로 퍼졌다. 아침 안개와 부슬비 속에서 풍경은 빠르게 지나갔다. ‘쿠오바디스 도미네(신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CLS가 달려가는 그곳으로 가고 있다.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디자인과 막강한 주행성능이 특징인 쿠페를 흔히들 욕망의 차라고 한다. ‘2도어 2인승’의 전통 쿠페는 뒷좌석이 아예 없다. 최근의 4인승 쿠페 역시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한 뒷좌석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오로지 달리는 즐거움과 미적(美的) 쾌락에 충실한 차다. 그래서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고 앞서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쿠페를 선택한다. 다른 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일종의 ‘자부심’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달 스페인 바로셀로나 일대에서 최고급 쿠페 라인업인 제3세대 신형 CLS 글로벌 미디어 시승행사를 열었다. CLS는 벤츠의 라인업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차종이다. 또한 벤츠의 철학이 담긴 차종이기도 하다. 기존 2도어 쿠페 시장에 2004년 ‘4도어 쿠페’를 처음 선보인 것도 벤츠다. 기존 관념에 자신의 주장을 담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 벤츠가 CLS를 통해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벤츠의 가장 고급 차종은 S클래스지만 ‘벤츠의 미래’를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차종은 CLS다.

메르세데스벤츠 신형 CLS는 기존 벤츠 디자인의 문법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벤츠’를 소비자에게 선보일 전망이다. 벤츠가 처음 적용한 앞부분 ‘상어 코’ 라디에이터 그릴은 젊은 층의 취향을 겨냥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서 처음 접한 신형 CLS는 첫눈에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번 신형 CLS는 일명 ‘상어 코(Shark nose)’로 불리는 전면부 디자인을 처음 차용했다. ‘벤츠의 관습’을 처음 깨뜨린 모델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더 돌출된 형상은 옆에서 보면 매우 공격적이고 앞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멈춰 있는 상태에서도 속도감을 구현해낸다. 기존의 벤츠가 보수적인 상류층의 이미지라면 신형 CLS는 모험을 마다않는 개척자의 이미지다.

내부는 고급스러웠다. 전투기의 터빈엔진 모습을 본 뜬 송풍구, 히터와 에어컨의 바람 온도에 따라 64가지 색깔로 스스로 변하는 앰비언스 조명, 센터페시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대형 디스플레이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게 없다.

뒷좌석이 기존 2인승에서 3인승으로 바뀐 점도 흥미롭다. 5인승 세단과 4인승 CLS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비자를 잡기 위한 고민과 타협의 산물이다. 쿠페의 맛은 줄었지만 실용성은 높였다.

시승은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시내, 인근 관광지 몬세라트 주변에서 지난달 26, 27일 이틀간 진행됐다. 시승모델은 고성능 모델 AMG CLS 53 4MATIC+, 그리고 CLS 450 4MATIC(가솔린), CLS 400d 4MATIC(디젤)이었다. 구간은 시내 도심 도로와 고속도로, 급커브와 오르막 내리막길이 많은 산길이 섞여 있었다. 전 세계 기자단 중 한국은 가장 처음 신형 CLS 시승 행사에 초청받았다. CLS가 가장 많이 팔리는 국가는 중국, 그 다음이 놀랍게도 한국이다. 대당 8000만∼1억 원에 달하는 고가 모델이 한국에서 이렇게 많이 팔린다는 사실에 벤츠 본사도 놀랐다고 한다. 벤츠가 한국을 특별하게 대우하는 이유다.

본격적으로 도심 주행을 시작한 뒤 운전석에서는 정숙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디젤 모델도 가솔린으로 착각할 만큼 조용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시속 140, 150, 160km를 넘어가는 동안 차가 굉음을 냈지만 여전히 주행 느낌은 안락하고 편했다. AMG 모델은 속도를 높이자 신호탄처럼 배기음이 작렬했다. AMG CLS 53 4MATIC은 3.0L(리터)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 최대출력 435마력, 최대토크 53kg·m, 최고 속도 시속 270km의 무시무시한 성능을 자랑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4.5초. 직선 구간에서 자동 차선변경 기능을 시험해봤다. 반(半)자율주행 모드를 켜고 좌측 방향지시등을 켜자 차가 스스로 알아서 천천히 차선을 바꿨다. 아직 한국에 없는 기능이다.

‘몬세라트’ 이정표를 시작으로 험로 구간이 시작됐다. 언덕길은 기본이고 좌우로 운전대를 쉴 새 없이 꺾어야 하는 연속 급커브 구간이 이어졌다. 매우 좁은 차선과 바로 옆 낭떠러지 절벽, 게다가 시야를 방해하는 빗줄기와 안개까지. 손에서는 땀이 났다. 하지만 차는 스스로 묵묵히 난코스를 돌파해 나갔다. 차선을 벗어나는 것을 방지해주는 차로유지보조 기능도 유용하게 쓰였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차가 차선을 밟거나 차로를 이탈하면 운전대에서 진동으로 경고가 왔고, 동시에 주행속도도 느려졌다. 차로 복귀를 돕기 위한 자동기능이다. 커브 구간에서 몸이 좌우로 쏠릴 때는 운전석과 조수석의 시트가 움직이며 몸을 꽉 잡아줬다. 왼쪽으로 쏠리면 왼쪽 시트 날개가 몸을 꽉 잡아주고, 오른쪽으로 쏠리면 오른쪽 날개가 작동됐다.

이틀을 함께 보낸 신형 CLS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차였다. 자율주행 기술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자동차 디자인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교통수단 그 이상, 차의 가치는 무엇인가. 글로벌 출시는 4월, 한국 출시는 여름이다.

바르셀로나=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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