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아이 잘 있나요? ‘생존 인증’ 동영상을 확보하라

기획·제작ㅣ김아연 기자·김채은 인턴

입력 2018-02-19 17:28 수정 2018-02-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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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존 인증’ 동영상을 확보하라

#2.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김모 형사는 5일 카카오톡 답변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출입국 기록상 일본에 있는 30대 여성에게 메시지를 보낸 지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3.
‘안녕하세요. 한국 경찰입니다. 지연이(가명) 보호자 되시죠?’
물음에 대한 답은 끝내 없었다. 김 형사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4.
‘지연이가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안 나왔더군요.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합니다.’
몇 분 뒤 답장이 왔다. 하지만 딱 네 글자.
‘잘 있어요.’

#5.
김 형사는 바로 답장했다.
‘말로는 안 되고 증명해 주셔야 합니다.’

#6.
초등학교 취학통지를 받고도 1월 예비소집에 불참한 아이들의 행방을 찾는 게 요즘 김 형사의 주 업무다.

#7.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건 학대의 징조일 수 있다.
형사가 아이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면 사안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학교 측과 동주민센터가 주소지 등을 찾아봐도 행방이 묘연할 때 경찰로 공이 넘어온다.

#8.
지난달 서울 경찰로 아동의 소재 파악 요청이 온 22건 중 지연이는 마지막 ‘미확인’ 건이었다.

#9.
부모는 일본으로 출국했지만 지연이는 출국 기록이 없었다.
가끔 여권 영문이름에 오류가 있거나 이중국적자일 경우 출입국 기록이 검색되지 않는 때가 있다.
하지만 김 형사는 지연이의 실물 확인 없이 안심할 수 없었다.

#10.
예비소집 불출석은 어쩌면 아이가 보내는 간절한 구조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외면했다.

#11.
불출석 아동 소재 파악은 지난해 비로소 시작됐다.
올해가 두 번째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집 가스배관을 타고 맨발로 탈출한 열한 살 A 양,
욕실에서 감금된 채 부모 학대로 숨진 일곱 살 원영이가 여론에 불을 지핀 결과였다.

#12.
김 형사가 일본으로 보내는 ‘카톡 노크’는 혹시 있을 수 있는 음지에 볕을 들이는 이를테면 ‘햇볕정책’이다.

#13.
‘잘 있다’는 말 외에 답이 없던 지연이 보호자에게 김 형사는 결국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아이의 현재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십시오. 그게 없으면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14.
그러자 지연이 보호자의 반응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렇게까지 하는지 몰랐네요. 곧 보낼게요.’

#15.
몇 시간 뒤 김 형사의 카톡으로 한 아이가 천진하게 웃는 사진과 집 거실을 뛰노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전달됐다.
‘아이와 함께 2월 말 귀국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왔다.

#16.
사진과 동영상 속 아이는 김 형사가 지연이 친인척을 통해 미리 확보한 얼굴 사진과 일치했다. 촬영 시각도 전송 직전이었다.

김 형사는 안도하며 답장했다.
‘2월 말 귀국하시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17.
아이들은 투표권도, 사회적 영향력도 없다.
그들의 절규는 집 담장을 넘기 힘들다.

#18.
아동을 위한 정의는 감금되어 있기 일쑤다.
아동보호제도는 아이들의 눈물과 죽음 뒤에야 고작 한발씩 나아간 슬픈 진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일궈낸 제도의 울림이 작지 않다.

#19.
2016년 경남 고성에서 일곱 살 친딸을 때리고 굶겨 숨지게 한 어머니.
부천에서 여중생 딸을 죽게 한 뒤 1년간 시신을 방치한 목사 아버지는 장기결석아동 전수조사 결과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해 고준희 양을 숨지게 한 부모 역시 비슷했다.
전국으로 확대되는 ‘위기아동 조기발견시스템’을 의식해 거짓 실종신고를 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20.
아이들에게 ‘잘 있느냐’고 묻는 어른들의 노크가 더욱 집요해져야 할 것 같다.

2018.02.19.(월)
원본ㅣ 신광영 기자
사진 출처ㅣ 동아일보 DB·뉴시스·Pixabay
기획·제작ㅣ김아연 기자·김채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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