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송충현]자기소개서에 인공지능 채점관이 등장한 이유

송충현 산업2부 기자

입력 2018-02-15 03:00:00 수정 2018-02-1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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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카톡.’

사적으로 만나 종종 술잔을 기울이는 지인들과의 단체 카톡창이 일순 분주해졌다.

“와, 나는 은행 입사하려 해도 못 하는 거였네?”

“SKY 출신보다 면접 점수 높아도 떨어진다는 말이네요. 쩝….”

무슨 말인가 싶어 대화 목록을 거슬러 올라가니 웹페이지 주소가 눈에 띄었다. KEB하나은행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 대학 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의 점수를 하향 조정했다는 뉴스였다.

심상정 의원실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SKY 대학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해 최종 임원면접이 끝난 뒤 다른 대학 졸업생의 점수를 낮춰 불합격시켰다. 소위 ‘안 좋은’ 대학 졸업생은 취업 시장에서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아도 ‘좋은’ 대학에 밀린다는 속설이 증명된 것이다. 카톡방 안에 있던 대학생, 직장인 등 지인들은 거짓말 같은 현실에 허탈해했다.

이후 하나은행의 해명은 취업 준비생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은행 간 기관 영업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은행이 입점한 대학 졸업생을 우대했을 뿐 특정 대학 출신을 합격시킬 의도는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어찌됐든 응시생 각자의 실력이 아닌 제3의 평가 기준이 있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경영진이나 사외이사의 자녀를 부당하게 합격시키기 위해 별도의 리스트를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채용 비리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재계는 급기야 인공지능(AI) 인사 담당관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업계는 그간 임의로 응시자의 점수를 조작하는 일을 막기 위해 연필 대신 볼펜으로 점수를 기입하게 하거나 응시자의 신상정보를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왔다. 이젠 아예 사람 대신 AI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롯데는 12일 올해 상반기 공개채용 서류심사에 AI 평가를 포함했다. 스펙이나 학력이 아닌 자기소개서 내용만으로 기업에 적합한 인재를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자소서의 어떤 내용이 서류 합격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까지 점수로 추적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공정 채용 논란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들죠.” 롯데 관계자의 말이다.

SK C&C는 지난달 25일 AI플랫폼 ‘에이브릴’을 SK하이닉스 신입사원 서류심사에 시범 활용했다. 인사 담당자 10명이 하루 8시간씩 7일간 살펴야 할 1만 명의 자기소개서를 8시간이면 평가할 만큼 빠르고 정확하다. 일본 역시 닛폰전기 등 많은 업체가 AI를 서류심사에 도입해 활용하는 추세다.

업체들은 AI를 도입한 이유에 대해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이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유통업체 등 일반 회사와 은행은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인식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일반 회사는 기업 이미지가 추락할 경우 매출에 직격탄을 입는다. 만약 롯데나 신세계 등 일반 회사에서 채용 비리가 발생했다면 시민단체나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은행은 금리에 따라 고객의 로열티가 쉽게 좌우되며 국내 업체끼리 경쟁하는 폐쇄된 시장이다. 은행장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해임됐다는 이유로 은행을 옮기는 고객은 드물 것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채용 비리가 얼마나 심하면 AI가 우리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나”라며 쓴웃음을 짓고 있다. “차라리 AI한테 맡기는 게 더 믿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청춘들이 사회생활의 시작만이라도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기업은 더욱 노력해야 한다.

송충현 산업2부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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