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동경영/기고]신주호 정선군 부군수 “아래는 잡곡밥, 위는 쌀밥… 임계 화전민 제례음식 ‘고깔밥’”

동아일보

입력 2017-12-15 03:00 수정 2017-12-15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던 조선중기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의 정선은 인근의 영월, 평창과 더불어 다산다촌(多山多村)으로 당연히 불릴 만도 한 땅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쓸 만한 쉼터가 몇 군데냐고 물어 볼 새도 없이 실눈 같은 산길과 고갯길에 숨이 차오르고, 평지보다 비탈이 많은 탓에 의지와 무관하게 총총대는 발걸음에 타박받던 정선은 전체 군 면적의 60%가 해발고도 700m를 넘는 산악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저런 산자락에 매달려 살았던 정선 사람들 중에서도 임계 화전민들의 삶의 무게는 이중환이 보았던 바로 그 정선이었다. 사방천지 둘러봐야 이웃도 없는 험한 산중에서 그럭저럭 입에 풀칠할 정도의 비탈진 산밭에 심어 둔 귀리, 메밀, 기장, 조, 옥수수, 콩, 감자와 이 산 저 산의 산나물 한 소쿠리가 열두 달 살아갈 임계 화전민의 삼시세끼였다. 백복령, 삽당령만 넘으면 강릉, 삼척의 별미 같은 생선 냄새라도 실컷 맡을 텐데 지게질로 잔뼈가 굵은 임계사람들도 지게장단에 맞춰 겨우 넘던 험한 산중 길 탓에 화전민의 외딴집에서는 주식(主食)과 별식(別食)의 산내(山內)음식들을 만들어 냈다. 담백하고 소소한 맛이 지금도 여전한 메밀부침개, 메밀전병, 수수부꾸미도 지지고 찐 메밀쌀에 푸성귀를 넣고 한소끔 느른하게 끓인 임계 화전민의 막장국밥인 ‘메밀국죽’도 한솥 끓였다. 지금에서야 소소한 음식일지언정 임계 화전민들의 비늘 같은 삶의 편린들이 실컷 묻어나는 음식들이다. 그래도 팍팍한 입맛은 여전히 배를 고프게 하여 기름진 돼지고기 비계 한입 양껏 물어뜯고 싶을 만큼 뽀얀 쌀밥은 여전히 그리운 음식이었다.

제삿날이면 제사상에 올린 ‘젯메(밥)’를 지어야 하는데 온통 감자며 콩이며, 옥수수로 지은 잡곡밥이라, 이날만이라도 하얀 쌀밥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밥공기 아래에는 잡곡밥을 담고 위로는 하얀 쌀밥을 얇게 펴 발라 마치 쌀밥인 것처럼 제사상에 올렸던 밥을 별식으로 먹었다. 이 밥을 임계 화전민들은 ‘귀신 눈 속이는 밥’이라며 ‘고깔밥’, ‘공갈밥’이라고 하였다. 임계 화전민들의 독특하고 고유한 전통 제례음식 문화이다. 가난한 삶에서도 조상의 보은에 정성을 다하고자 했던 마음에서 유래한 ‘고깔밥 젯상’을 임계시장의 전통음식문화로 발굴 복원하였다. 당시 화전민들의 조리법에 따라 실제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7첩, 9첩, 12첩 반상차림으로 하여 임계시장을 대표하는 지역 화전민 전통제례음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어적(魚炙)으로는 토막을 치고 싸리 꼬챙이에 꿰어 온전한 한 마리처럼 올린 간고등어 조림, 편(餠)으로는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뽀얀 쌀밥 대신 입쌀떡(절편)에 조청을 올리고, 숙채(熟菜)로는 막장에 심심하게 무친 배추나물, 무청나물, 곤드레나물이고, 삼적(三炙)으로는 메밀배추전, 메밀전병 등을 올린다. 여기에 강원도 토속 콩장음식인 ‘뽁작장’을 올려 숙채나물에 비벼 먹도록 상차림을 내준다. 그 밥상을 처음 받아 본 겨울이다. 화전민들에게는 더없이 추웠을 겨울이다. 문득 지금에서야 임계 화전민의 ‘고깔밥’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가슴 따듯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진다.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