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필 때쯤 찾아오는 돈가뭄… 사회투자 ‘마중물’ 넣어주자

강유현기자 , 유성열기자

입력 2017-10-24 03:00 수정 2017-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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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사회적 기업]<中> 자금조달 생태계 만들자

이호철 포이엔 대표(40)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그는 2011년 온실가스가 적게 나오는 퇴비를 상용화했다. 가축 분뇨를 발효하는 대신 커피 찌꺼기를 열분해하는 기술을 접목해 이룬 성과였다. 이를 통해 포이엔은 지난해 7억3400만 원의 매출과 3800만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에 자신감을 얻고 사업을 확장해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고 사업장도 이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금 확보가 발목을 잡았다. 은행에서는 대출용 담보를 요구했고, 제품 특성상 민간펀드들의 통상적인 운용기간 내 자금회수가 어려워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았다.

포이엔과 같은 소셜벤처(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나 사회적 기업들이 지속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선 ‘자금조달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일반 창업기업보다 이익 규모가 크지 않고, 그만큼 데스밸리(신생기업이 창업 후 투자금을 소진해 겪는 첫 번째 위기)를 넘어서기 어렵다. 이 때문에 소셜벤처들은 초기에는 정부 지원금이나 민간의 기부성 자금, 창업자 개인 명의 대출 등으로 버티지만 사업이 확장될 시기에 은행과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해 위기에 처하기 일쑤다.

그간 정부는 모태펀드를 통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해왔다. 정부가 일정 규모의 자금을 출자하면 민간에서 같은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 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정부 특성상 원금 손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정적인 기업들에 집중 지원하게 되고, 사회적 기업은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은행권에서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자 및 지원 방안은 찾기 어렵다.

현재 금융시장에서 소셜벤처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자금 조달 수단은 다수의 투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투자금을 모아주는 크라우드 펀딩이다. 오마이컴퍼니, 유캔스타트 등이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 서울시에서 제공한 토지에 임대주택을 짓는 사업을 하는 녹색친구들은 지난해 오마이컴퍼니를 통해 총 38명의 투자자로부터 1억 원을 조달했다. 6개월 만기, 연 10% 수익률의 대출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 규모가 크지 않아 지속적인 자금줄이 되긴 어렵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전문 투자자의 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시장에선 이미 사회적 기업 전문 투자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기업들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소풍’은 2008년부터 쏘카(차량 공유), 텀블벅(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등 28개 소셜벤처에 투자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가 중심이 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도 최근 출범했다.

하지만 보다 활발한 사회적 기업 투자를 위해서는 정부의 자금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가 위험을 먼저 떠안는 후순위 투자 방식으로 자금을 댄 뒤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하면 투자 위험성이 낮아져 민간 자본 유치도 훨씬 수월해진다. ‘사회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모델 개발도 시급하다. 소셜벤처들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해 투자자들이 투자할 근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소셜벤처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 영국에서는 2012년 정부 주도로 사회 투자 도매 은행인 ‘빅소사이어티 캐피털’이 출범했다. 은행권의 휴면예금 4억 파운드(약 5960억 원)와 바클레이스, HSBC, RBS 등이 낸 기부금 2억 파운드 등 총 6억 파운드를 기금으로 조성했다. 이 기금은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단체에 50만∼1000만 파운드씩 지원됐다. 미국 JP모건은 2007년 사회적 기업 또는 사회적 프로젝트에 전담으로 투자하는 조직을 신설했다. 미국 록펠러재단은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단체에 1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와 자선재단 등이 투자의 마중물을 제공하고 민간 자금을 유치해 만든 대규모의 자금이 사회적 기업의 성장 자본으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정부가 지원하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강유현 yhkang@donga.com·유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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