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경단녀도 60대 예비역도 “재취업 덕에 자신감 재충전”

정민지기자

입력 2017-10-24 03:00 수정 2017-10-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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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리스타트 잡페어/함께 만드는 희망 일자리]<2> 리스타트로 삶이 달라진 사람들
31일, 11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터로 돌아온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육아에 전념하다가 옛 직장에 재취업한 김선경 씨(위쪽 사진)는 “아이 때문에 4시간밖에 못 자도 출근길이 즐겁다”고 말했다. 대령으로 예편한 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이명하 씨는 “소속감이 다시 생겨 기쁘다”고 강조했다. 홍진환 jean@donga.com·김경제 기자

경력사원 채용 면접장에 들어설 때 김선경 씨(35) 가슴은 유난히 쿵쾅거렸다. ‘내 발로 그만둔 곳인데 다시 받아줄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서를 냈던 곳이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면접관 중에 전에 같이 일했던 상사가 앉아 있었다. 괜히 울컥하는 맘을 추스르며 자세를 바로 고쳤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김 씨는 졸업 후 2005년 신세계푸드에 입사했다. 신세계푸드는 위탁급식, 외식사업, 식품제조업 등을 하는 신세계그룹 계열사다. 입사 후 ‘완벽주의자’ 소리까지 들어가며 열심히 일했던 김 씨. 하지만 결혼 후 건강 문제로 일을 쉬어야 할 상황이 왔다. 결국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출산과 육아에만 전념했다. 각오는 했지만 고된 육아에 심신은 지쳐갔다. 특히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많았다. 아이가 돌을 넘기면서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재진입 장벽은 높았다. “3, 4년 경력의 20대 후반 영양사를 경력직으로 뽑지 왜 널 뽑겠냐. 직장을 쉰 지 5년이나 되고 애도 있는데 누가 뽑겠냐.” 주변에서는 다들 비관적인 말만 했다. 면접에 들어가면 “오래 쉬었는데 감이 남아있냐”는 말에 움츠러들었다.

이때 김 씨에게 한줄기 빛이 돼 준 것은 전 직장이었다. 신세계푸드는 육아나 가사 등의 이유로 퇴직했던 직원들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재취업 기회를 열었다. 김 씨가 그 첫 번째 대상자였다. 그는 “고향에 돌아간 느낌이었고, 8년간의 회사 생활을 헛한 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면서 웃었다.

김 씨는 올해 1월 복귀 후 첫 근무지로 신세계푸드가 위탁급식을 맡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코트야드 메리어트서울 타임스퀘어 호텔 직원식당으로 발령받았다. 다시 돌아온 일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는 “특히 사람을 대할 때 ‘엄마 마음’이 든다. 20대 초중반 신입 직원들을 보면 하나라도 챙겨주고, 더 맛있는 걸 먹이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쪽으로 회사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경력 단절 위기를 시간선택제 근로로 극복한 이들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IFC몰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부점장으로 근무하는 한혜민 씨(35)다. 아이 둘을 기르면서 4시간만 근무하는 ‘파트타임’으로 6개월간 일하다 최근 다시 전일제 근무로 바꿨다. 한 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전까지는 근무시간을 줄이며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맞췄다. 어린이집을 보내고는 전일제로 전환해 일의 비중을 늘렸다. 사회생활로 내 삶이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일자리는 수십 년간 일을 하고 퇴직한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20일 서울 은평구 ‘에버영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이명하 씨(60)는 ‘검색결과 1파트 매니저’란 직함이 쓰인 명함을 건넸다.

이 씨는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 등을 하다 2011년 대령으로 예편하고 비상계획관으로 4년간 근무했다. 58세 때 퇴직하고는 1년을 꼬박 쉬었다. 그러곤 문을 두드린 곳이 에버영코리아다. 네이버 협력업체인 에버영코리아는 시니어 정보기술(IT) 전문기업으로 만 55세 이상 직원 43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네이버 ‘거리뷰’ 사진에서 행인의 얼굴이나 차량 번호판을 지우고, 유해성이 있거나 불법적인 인터넷 게시판을 검색 차단하는 등의 일을 위탁받아 한다.

이 씨의 근무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놀림을 지켜보니 10대들 못지않았다. 자체 시스템으로도 걸러지지 않은 유해 사이트와 게시글을 일일이 체크해 검색이 안 되도록 막는 일이 그의 주 업무다. 그는 “4시간 동안 군대에서 비상근무를 서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된다”며 웃었다.

‘리스타트’ 소감을 묻자 소속감이 생긴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비슷한 나이대가 모여 함께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라고 했다. 모니터를 오래 보면 눈이 침침하지 않으냐고 걱정하자 “전혀 그렇지 않다. 컴퓨터에 원래 관심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다”고 말했다.

김성규 에버영코리아 경영지원실장은 “어르신들은 몸이 아파도 퇴근하고 나서야 병원에 가실 정도로 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다. 젊은이들에 비해 확실히 책임감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에버영코리아는 실버 직원들을 채용하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김 실장은 “입사 교육을 할 때 ‘서로 대화할 때 자식 자랑, 종교·정치 얘기만 하지 말라’고 한다. 서로 박탈감을 느낄 얘기를 피해야 실버 직원들이 모인 조직 운영이 원활하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학구열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청춘’이다. 퇴직 후 드론 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드론 수업도 한다.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배우고, 연말에는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까지 취득할 계획이라고 한다. ‘리스타트’로 새로운 인생을 계속 열어가는 이 씨의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그는 “배우는 것 자체가 재밌다. 30대인 아들딸이 ‘아빠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다’고 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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