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in 북한’ 여전히 과거형

김선미기자

입력 2017-10-18 03:00 수정 2017-10-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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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출판사 北디자인 관련 책 출간

<1>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출산을 기념하는 우표. <2> 고려항공이 승객들에게 제공하는 부채. <3> 종전(1953년) 40주년 기념행사 초대장
《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폭이 넓은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찰스 왕세자는 갓 태어난 아기를 새하얀 포대기에 싸서 안고 있다. ‘윌리엄 왕자 전하 1982년 6월 21일’이라는 영어 문구가 쓰인 이 사진은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우표에 실린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이 영국 왕세손의 탄생을 기념해 우표를 발행했던 것이다. 세계적 예술서적 전문출판사인 영국 ‘파이돈’이 이달 초 펴낸 북한 디자인 책, ‘메이드 인 북한(Made in North Korea)’에 이 우표가 나온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그곳에도 디자인이 있었다. 》
 
연간 2000여 명의 외국인을 북한으로 관광 보내는 중국 베이징의 ‘고려여행사’ 대표이자, 북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 편을 찍은 영국인 니컬러스 보너 씨가 책의 저자다.

우표, 포장지, 엽서, 담배와 성냥, 맥주 상표, 기차표 등 저자가 2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북한의 생활용품 사진 500여 장이 240쪽 분량에 광범위하게 담겨 있다.

파이돈 출판사 측은 “지구상에서 가장 베일에 가려 있는 수수께끼 같은 북한의 디자인 자료를 묶어낸 데 의미가 있는 책”이라며 “북한 제품의 그래픽 디자인이 예상외로 아름답고 단순함 속에서 묘한 매력을 풍긴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국내에는 아직 번역, 출판되지 않았으며 아마존 등 해외 사이트를 통해 구할 수 있다.

‘그곳의 디자인’은 어떨까. 저자는 영어로 된 이 책에서 북한 디자인의 특징을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일심단결’, ‘머리단장을 사회주의 양식에 맞게 하자’의 한글 부제를 달아 설명했다.

<4> 평양고려호텔에서 제공하는 종이백. <5> 북한의 유명 건축물들을 프린트한 포장지. <6> 장난감 권총과 총알이 든 박스. 파이돈 제공
플라스틱 장난감 권총에는 ‘일당백’이라고 쓰여 있는데, 저자는 이 표현이 ‘한 명이 백 명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권총 박스에는 북한 고슴도치가 미국(US) 모자를 쓴 늑대를 총 쏘아 쓰러뜨리는 만화가 그려져 있다. 한 제품 포장지에는 고려호텔과 만수대 예술극장 등 북한의 유명 건축물들이 프린트돼 있고, ‘은하수’ 사탕 상자에는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해변을 달리는 기차 그림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의 산업·제품 디자인은 주로 평양미술대 졸업생들이 예술창작소에 모여서 만들어낸다. 백두산과 금강산, 천리마 등을 모티브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노골적으로 사실에 충실한 시각 디자인도 눈에 띈다. 돼지고기 통조림엔 돼지, 닭고기 통조림엔 닭, 쇠고기 통조림엔 소가 그려져 있다. 색상 배합은 환한 분홍과 빨강을 기반으로 초록, 파랑, 노랑을 곁들여 쓴 게 많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책에 실린 북한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단조롭고 소박하며 사회주의적 감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박승호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이 책에 소개된 북한의 디자인을 ‘비무장지대(DMZ) 디자인’으로 해석했다. 접근이 통제된 생태공간에서 자생한 들국화와 같은 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북한이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조선의 전통적 색감과 형태미, 혁명적 형식미를 느리게 발전시킨 것 같다”며 “인쇄기술은 낙후됐으며, 컴퓨터 없이 손으로 그린 거친 사실주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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