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생긴 해충 →더 강한 살충제‘악순환’… 위협받는 식탁 안전
이미지기자 , 김윤종기자 , 김동혁 기자
입력 2017-08-19 03:00 수정 2017-08-19 03:00
[토요판 커버스토리]살충제 계란 파문… 다른 먹거리는 괜찮나
“하루아침에 무시무시한 살충제를 뿌리는 악덕업자로 전락했네요.”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사상 초유의 ‘살충제 계란’ 사태가 전국을 덮쳤다. ‘완전식품’ 계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AI의 피해자인 양계 농민들은 졸지에 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 가해자가 됐다.
경기 포천시의 양계농장주 A 씨(35)는 “친환경 약품은 약효가 떨어지는데 가격은 되레 비싸다”며 “닭 진드기가 극심해지면 결국 강력한 살충제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관계자는 “(상당수 양계농장이) AI 여파로 산란계 확보가 어려워 노계(老鷄·늙은 닭)만으로 생산을 이어왔다”며 “하필 날씨마저 덥고 습해 닭 진드기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말했다.
○ ‘강한 살충제→내성→더 강한 살충제’
1939년 개발된 DDT는 ‘기적의 살충제’로 통했다. 기존 살충제는 곤충이 살충제 성분을 먹어야 박멸됐다. 하지만 DDT는 뿌리는 순간 곤충의 지방층에 흡수돼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들을 단시간에 거의 완벽하게 박멸한 것. 하지만 곤충들은 빠르게 내성을 키웠다. 결국 해충은 살아남고 해충의 천적 곤충과 야생동물, 인간이 피해를 보는 ‘살충제의 역설’이 빚어졌다.
DDT 사례에서 보듯 아무리 뛰어난 살충제라도 내성이 생겨 해충을 100% 박멸할 수 없다. 현재 국내 농가에 피해를 주는 해충은 여러 종류의 진드기를 비롯해 미국선녀벌레, 갈색날개매미충, 꽃매미, 멸강나방 애벌레 등 돌발 외래충까지 수십 종에 이른다. 이들의 내성은 실제로 얼마나 강해졌을까?
최광식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지난해 말라리아 매개모기인 중국얼룩날개모기를 채집해 저항성 유전형질(내성)을 조사한 결과 경기 파주와 김포, 인천 강화 등 3곳에서 채집한 모기의 살충제 내성은 각각 100%, 93.3%, 94.3%에 달했다. 이들 지역의 말라리아모기는 살충제를 뿌려도 거의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은 “닭 진드기나 이는 영하 50도에서도 생존하고, 9개월간 흡혈하지 않아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애초 생존력이 강한데 평소엔 닭장 틈새에 숨어 있어 죽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농가들이 살충제를 더 세게, 더 많이 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살충제를 많이 뿌릴수록 해충의 내성도 더 빨리 생겨 결국 더 센 살충제를 써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도 이미 2007년에 내성이 확인됐다. 서울대와 국립농업과학기술원(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진이 살충제 15종을 닭 진드기에 살포했더니 피프로닐을 포함한 7종의 살충제는 나머지 살충제의 수십 배 이상을 뿌려야만 겨우 진드기의 절반을 죽일 수 있었다. 당시에도 피프로닐은 사용이 금지돼 있었지만 이미 다수 농가가 피프로닐을 불법 살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살충제 성분은 체내에 축적돼 위험”
이렇게 점점 독한 살충제에 노출된 농축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정진호 서울대 약학과 교수(전 한국독성학회장)는 “살충제는 일반적으로 지용성이라 체내에 축적될 수 있다”고 했다. ‘살충제 계란’도 닭의 깃털을 통해 흡수된 살충제가 배출되지 않고 계란에 축적돼 발생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난해 9월 추석을 맞아 주요 농산물의 잔류 농약 안전성을 조사한 결과 부추와 고춧잎, 열무, 당근 등에서 잔류 농약이 허용 기준치를 넘어 유통을 차단하기도 했다.
미국의 비영리 환경단체인 ‘환경행동모임’이 올해 발표한 ‘농산물 농약 가이드’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통되는 농산물 48종류 중 70%에서 178개 종류의 잔류 농약이 검출됐다. 농작물이 아니더라도 △통조림의 비스페놀A △소나 돼지, 해산물 속 카드뮴 등 중금속 △쌀 등 곡물 속 비소 △음식의 색깔이나 향을 내는 착색제와 향료 속 화학물질 등 음식을 통해 체내에 흡수될 유독물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살충제 등 유독물질이 허용 기준치를 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장기적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8일 “급성독성(섭취 직후 나타나는 독성)은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섭취한 경우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논문과 인체 사례 보고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지속적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의들은 일부 식품 속 독성물질의 경우 미량이라도 장기간 몸에 누적될 경우 신경 기능 저하와 근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저하돼 당뇨 가능성이 커지고, 0∼5세 아동이나 산모는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도 있다. 암 발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윤철 서울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독성물질이 장기간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김윤종 / 포천=김동혁 기자
“하루아침에 무시무시한 살충제를 뿌리는 악덕업자로 전락했네요.”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사상 초유의 ‘살충제 계란’ 사태가 전국을 덮쳤다. ‘완전식품’ 계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AI의 피해자인 양계 농민들은 졸지에 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 가해자가 됐다.
경기 포천시의 양계농장주 A 씨(35)는 “친환경 약품은 약효가 떨어지는데 가격은 되레 비싸다”며 “닭 진드기가 극심해지면 결국 강력한 살충제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관계자는 “(상당수 양계농장이) AI 여파로 산란계 확보가 어려워 노계(老鷄·늙은 닭)만으로 생산을 이어왔다”며 “하필 날씨마저 덥고 습해 닭 진드기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말했다.
○ ‘강한 살충제→내성→더 강한 살충제’
1939년 개발된 DDT는 ‘기적의 살충제’로 통했다. 기존 살충제는 곤충이 살충제 성분을 먹어야 박멸됐다. 하지만 DDT는 뿌리는 순간 곤충의 지방층에 흡수돼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들을 단시간에 거의 완벽하게 박멸한 것. 하지만 곤충들은 빠르게 내성을 키웠다. 결국 해충은 살아남고 해충의 천적 곤충과 야생동물, 인간이 피해를 보는 ‘살충제의 역설’이 빚어졌다.
DDT 사례에서 보듯 아무리 뛰어난 살충제라도 내성이 생겨 해충을 100% 박멸할 수 없다. 현재 국내 농가에 피해를 주는 해충은 여러 종류의 진드기를 비롯해 미국선녀벌레, 갈색날개매미충, 꽃매미, 멸강나방 애벌레 등 돌발 외래충까지 수십 종에 이른다. 이들의 내성은 실제로 얼마나 강해졌을까?
최광식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지난해 말라리아 매개모기인 중국얼룩날개모기를 채집해 저항성 유전형질(내성)을 조사한 결과 경기 파주와 김포, 인천 강화 등 3곳에서 채집한 모기의 살충제 내성은 각각 100%, 93.3%, 94.3%에 달했다. 이들 지역의 말라리아모기는 살충제를 뿌려도 거의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은 “닭 진드기나 이는 영하 50도에서도 생존하고, 9개월간 흡혈하지 않아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애초 생존력이 강한데 평소엔 닭장 틈새에 숨어 있어 죽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농가들이 살충제를 더 세게, 더 많이 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살충제를 많이 뿌릴수록 해충의 내성도 더 빨리 생겨 결국 더 센 살충제를 써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도 이미 2007년에 내성이 확인됐다. 서울대와 국립농업과학기술원(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진이 살충제 15종을 닭 진드기에 살포했더니 피프로닐을 포함한 7종의 살충제는 나머지 살충제의 수십 배 이상을 뿌려야만 겨우 진드기의 절반을 죽일 수 있었다. 당시에도 피프로닐은 사용이 금지돼 있었지만 이미 다수 농가가 피프로닐을 불법 살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살충제 성분은 체내에 축적돼 위험”
이렇게 점점 독한 살충제에 노출된 농축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정진호 서울대 약학과 교수(전 한국독성학회장)는 “살충제는 일반적으로 지용성이라 체내에 축적될 수 있다”고 했다. ‘살충제 계란’도 닭의 깃털을 통해 흡수된 살충제가 배출되지 않고 계란에 축적돼 발생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난해 9월 추석을 맞아 주요 농산물의 잔류 농약 안전성을 조사한 결과 부추와 고춧잎, 열무, 당근 등에서 잔류 농약이 허용 기준치를 넘어 유통을 차단하기도 했다.
미국의 비영리 환경단체인 ‘환경행동모임’이 올해 발표한 ‘농산물 농약 가이드’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통되는 농산물 48종류 중 70%에서 178개 종류의 잔류 농약이 검출됐다. 농작물이 아니더라도 △통조림의 비스페놀A △소나 돼지, 해산물 속 카드뮴 등 중금속 △쌀 등 곡물 속 비소 △음식의 색깔이나 향을 내는 착색제와 향료 속 화학물질 등 음식을 통해 체내에 흡수될 유독물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살충제 등 유독물질이 허용 기준치를 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장기적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8일 “급성독성(섭취 직후 나타나는 독성)은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섭취한 경우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논문과 인체 사례 보고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지속적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의들은 일부 식품 속 독성물질의 경우 미량이라도 장기간 몸에 누적될 경우 신경 기능 저하와 근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저하돼 당뇨 가능성이 커지고, 0∼5세 아동이나 산모는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도 있다. 암 발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윤철 서울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독성물질이 장기간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김윤종 / 포천=김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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