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계 농장에 CCTV 설치… 친환경 기준위반 처벌 강화

세종=이건혁기자 , 세종=최혜령기자

입력 2017-08-19 03:00 수정 2017-08-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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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살충제 계란 파문… 정부, 대책 발표

계란의 생산, 인증, 유통의 전 과정에서 문제를 드러낸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 진화를 위해 정부가 종합 처방전을 꺼내 들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먹거리와 관련해 방치돼 왔던 문제점까지 한꺼번에 해결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조류인플루엔자(AI) 재발 방지를 위해 추진 중인 겨울철 휴업보상제도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대책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또 이번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산란계 농가에 대한 전수조사가 허술하게 진행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남에 따라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농장에 CCTV 설치…닭 사육 환경 개선

18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친환경 동물 복지농장 확대를 포함한 축사 환경 개선이다. 지난해 말 전국을 뒤흔든 AI 사태뿐 아니라 이번 ‘살충제 계란’은 열악한 닭의 사육환경이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장기적으로 닭 운동장을 갖춘 동물복지 사육시스템으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닭의 사육법, 닭장 넓이까지 알려주는 유럽연합(EU)의 사례처럼 농장의 사육환경을 계란에 표시하는 제도도 도입한다.

축산 농가의 생산 환경, 살충제 사용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 설치도 추진된다. 김 장관은 “(이낙연) 국무총리도 CCTV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이는 AI를 방지하는 데도 중요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축사 현대화 사업이나 도살 처분 보상금 추가 지급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농가가 자발적으로 CCTV를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계란의 생산 정보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다. 현재 돼지고기와 쇠고기에만 적용되는 이력(履歷) 추적 시스템을 닭고기와 계란에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김 장관은 “내년 하반기(7∼12월)에 시범사업을 거쳐 2019년부터는 실시하겠다”고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했다. ‘계란과 닭고기 생산량이 많아 시스템 구축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미국 등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고 농장 단위로 도입하면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살충제 사용 사실이 발견된 농가와 이들 제품을 대형마트, 음식점 및 학교급식소 등에 납품한 업체는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는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업체와 농가는 생산자 이름 등 관련 정보도 공개해 특별 관리된다. 살충제 사용 기준을 위반해도 처벌 규정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향후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 신뢰 무너진 친환경 인증 체계 개혁해야

하지만 이번 대책이 현실화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무엇보다 예산 확보가 관건이다. 정부는 연례행사로 굳어지고 있는 AI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핵심 대책 중 하나로 가금류 사육 휴지기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장관은 “농장에 CCTV를 설치하는 방안의 경우 약 82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며 “예산 당국과 협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통해 친환경 인증이 매우 부실하게 운영된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번 대책에서 이에 대한 개선방안이 미흡한 점도 보완해야 할 숙제다. 살충제 성분을 써도 버젓이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는 현 시스템으로는 식품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친환경 인증 표시가 취소되더라도 1년이 지나면 인증을 재신청할 수 있는 현행 기준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김 장관은 “친환경 기준에 위반되는 사례가 나오면 벌칙을 강화해 계란 유통을 금지할 수 있게 하는 등 농가에서 부담을 느끼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태가 진정되면 개선 방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수준으로는 인증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인증기관과 이를 감독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농식품부 등에 따르면 친환경 농산물 인증기관으로 지정된 민간업체 64곳 중 5곳의 대표가 농관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또 민간업체에 근무하는 직원의 약 12%가 농관원 근무 경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에 대해 “재취업 과정에 결격사유가 없었고, 대부분 하위직이어서 논란이 될 만한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대책 마련을 위해 진행한 전수조사가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점도 반드시 보완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무작위로 계란을 수집해 조사해야 하는데도 농장 주인이 제공한 계란을 이용함으로써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렸다. 또 전남, 강원, 경남, 충북,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선 살충제 검출 시약이 모자라 살충제 27종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도 못하고, 일부 조사를 빠뜨린 것으로 드러났다.

박용호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농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협업이 안 되는 모습까지 나오며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졌다. 정부가 식품 관리는 물론이고 문제 해결 능력까지 확보했다는 믿음을 소비자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 / 광주=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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