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에 대처하는 고양이들의 자세
노트펫
입력 2017-08-17 11:08 수정 2017-08-17 11:09
말리는 고양이, 나무라는 고양이
[노트펫] 제이가 아직 태어난 지 5~6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시절. 제이는 말 그대로 ‘캣초딩’이었다.
온갖 곳을 뛰어다니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물어뜯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초딩 고양이도 분위기를 읽는다는 것이다.
제이에 대한 나의 시선과 애정을 남편은 콩깍지라고 하지만, 가끔 제이의 행동이 내 마음을 다 아는 것 같아 깜짝 놀라게 될 때가 있다.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우리 부부는 결혼 초에 자주 의견이 갈렸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다 보면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도 있었다.
제이는 꼭 그럴 때면 슬그머니 다가와 신랑 다리 근처에서 몸통을 붙이고 우리를 빤히 올려다봤다.
뻔뻔한 표정을 짓고 우리 사이에 앉아 요가 자세로 그루밍이라도 하면 긴장된 싸움 전선에 맥이 좀 풀릴 수밖에 없었다.
제이가 우리 분위기를 감지하며 마치 위로하려는 듯 다가오면 별 수 없이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린 자식들에게는 부모님들의 부부싸움이 마치 전쟁만큼 두렵게 느껴진다는데, 제이도 우리가 싸우는 줄 아는 걸까 싶어 미안한 마음에라도 빨리 사태를 종전시키게 된다.
반면 아리는 신랑과 내가 쌀쌀맞은 말을 주고받고 있으면 중간에 끼어들어 자기가 대답을 할 때가 있다.
어디선가 꼬리를 세우고 뛰어나와서는 ‘야아옹, 냐아아아웅’ 하고 나무라듯 애옹거린다. 그리고 내 품으로 파고들어 나를 침대 삼아 눕곤 한다.
싸움을 말리려고 한다기보다는, 우리의 싸움보다 자신이 예쁨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내 품에 안긴 아리는 이어 앞발을 야무지게 펴서 가슴팍에 대고 꾹꾹이를 한다. 우리 부부는 하던 말을 잊고 아리를 쳐다보며 꾹꾹이 쇼(?)를 감상한다.
신랑은 싸우다 말고 고양이들의 애교를 동영상으로 찍을 때도 있다. 그게 지금 중요하냐고 면박을 줘보지만, 우리 집 고양이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 쓰다듬을 받고 꾹꾹이를 하는 게 세상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걸 보고 있으면 싸움이 시들해진다. 아무리 진지한 순간에도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니까.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순간엔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고양이들 역시 우리 집의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개성 뚜렷한 가족 구성원이니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숨을 돌리며 차근차근 문제의 해결점을 향해 나아간다.
정작 두 고양이는 심심하면 괜히 시비를 걸고 싸운다. 툭 하면 서로 붙들고 투닥거리니, 그만 좀 싸우라고 투덜거리거나 깃털 장난감을 흔들어 관심을 돌리는 건 이번엔 집사가 해야 할 역할이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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