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US여자오픈 제패…우승 순간의 재구성, 세계가 놀란 ‘18번홀 어프로치’

스포츠동아

입력 2017-07-18 05:45 수정 2017-07-1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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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18번홀 네 번째 샷이 홀컵 바로 옆에 붙는 순간, 우승은 박성현(KEB하나은행)의 차지였다. 박성현이 1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72회 US여자오픈에서 4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18번홀을 마치고 손을 흔들며 기뻐하는 박성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4R 2타 뒤진 4위 출발…15번홀 트럼프 앞에서 단독선두
18번홀 환상의 범프앤런샷…“대단한 일을 해냈다” 극찬


2017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 최종라운드가 열린 1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골프클럽. 박성현(24·KEB하나은행)은 18번홀(파5) 세 번째 샷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깃대까지 남은 96야드. 공은 그린을 훌쩍 넘어 뒤쪽으로 굴어갔다. 가서는 안 될 곳이었다. 챔피언 조의 펑샨샨에 2타차로 앞선 선두. 이 한 타만 그린에 무사히 올리면 우승은 확실했다.

하필이면 오늘 날린 샷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샷이 이 순간에 나왔다. 그린으로 걸어가는 내내 마음이 펌프질하듯 뛰었다. 지난해 18번홀이 떠올랐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 주위에서 기억나게 해줬다. 매스컴은 이번에도 그 샷을 물어봤다.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년 전 그날은 1타차로 뒤진 채 18번홀을 시작했다. 드라이브 샷 이후 결정을 내려야 했다. 파5. 버디를 잡아 연장으로 게임을 몰아가기 위해서는 위험하지만 승부를 걸어야 했다. 직접 그린을 노리기 위해 3번 우드를 들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공이 물에 빠졌다. 결국 보기를 했다. 우승의 꿈은 날아갔고 최종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아쉬웠다.

그 경험이 보약이 됐다. 올해 대회 1라운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샷이 2,3라운드를 접어들면서 정돈되기 시작했다. 4라운드에서 선두에 2타차 뒤진 4위로 경기를 시작했지만 전반 9홀에서 3개의 버디와 1개의 보기로 기회의 문을 일찍 열었다.

박성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파4 12번홀 버디로 펑샨샨, 최혜정과 공동선두가 됐다. 파5 15번홀 버디로 단독선두가 됐다. 계속 단독선두를 지켜왔던 평샨샨은 버디와 보기를 맞바꾸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여고생 최혜진이 무섭게 따라와 15번홀에서 공동선두까지 됐지만 파3 16번홀에서 티샷이 물에 빠지면서 더블보기를 했다.

이날 3명밖에 버디를 만들지 못한 가장 어렵다는 파4 17번홀. 버디를 했다. 이제 2위와 2타차. 파5 18번홀에서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안전하게 코스를 잘라서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맞이한 3번째 샷을 웨지로 쳤지만 공은 내 마음과는 달리 멀리 가버렸다.

심한 내리막 그린. 깃대에서 7야드만 지나가면 그린 끝이었다. 그 뒤로는 급경사로 물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공이 멈춘 프린지에서 그린 입구까지 거리를 재봤다. 큰 걸음으로 7발자국이 나왔다. 만만치 않은 거리인데다 자칫하면 강하게 구르면 그린 반대편까지 공이 가속도가 붙을 수 있었다.

과연 최대한 홀에 가까이 붙일 수 있을까. 긴장이 됐다. 또 한 번의 실수는 생각만 해도 악몽이었다. 침착해야 했다. 곁에서 캐디 데이비드 존스가 “평소 훈련대로만 하라”고 계속 말했다. 그랬다. 이 순간 믿을 것은 오직 내 몸의 기억이었다. 내 리듬과 루틴을 찾아야 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어프로치샷을 많이 훈련했다.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골프클럽의 코스의 그린 주변이 러프는 깊지 않지만 그린의 경사가 심했다. 굴려서 홀까지 안전하게 공이 가도록 하는 범프앤런 샷을 집중 반복한 이유였다.

골프채를 처음 잡은 이후 이런 어프로치 샷을 얼마나 많이 훈련했을까. 다양한 거리와 다양한 러프 상황에 따라 치는 방법도 달라지는 어프로치샷. 이 짧은 샷에 투자한 시간과 땀과 정성은 얼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과연 내 몸이 지금 이 순간 그 샷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믿어야 했다. 모든 것을 잊고 오직 공이 떨어지는 지점만을 생각해야 한다. 집중 또 집중. 공을 굴렸다. 적당한 스피드로 아름다운 커브를 그리며 공이 홀을 향해 움직였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FOX TV의 캐스터는 공의 궤적을 보며 “Some kind of special, brilliant(대단하고 현명한 샷을 했다)”고 외쳤다.

박성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공은 홀 앞에서 멈췄다. 됐다. 안전하게 탭인 퍼트로 홀아웃 했다. 4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77타. 첫 LPGA 투어 우승은 이처럼 박성현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가장 많은 상금(우승상금 약 10억3000만원)이 걸린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이다. 꿈에 그리던 우승이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운명의 어프로치샷 순간에 긴장하지 않고 움직여준 내 몸과 몸의 기억에 감사할 뿐이다.


TIP : 범프앤런(Bump&Run) 샷은?

칩앤런(Chip&Run)이라고도 불리는 어프로치 샷 가운데 한 종류. 그린 주변에서 공을 굴려서 원하는 곳에 보내는 샷을 말한다. 그린 앞이 열려 있고 페어웨이나 그린이 딱딱할 경우 공을 굴려서 홀컵 가까이 붙이는데 유용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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