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마법’에 끌려… 기업들 지주사 전환 잰걸음

신민기기자 , 이샘물기자

입력 2017-04-29 03:00 수정 2017-04-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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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분할때 지주사에 신주 배정, 자사주 의결권 살아나 지배력 커져
지주사 규제 강화 상법개정안… 입법 앞두고 재계 셈법 엇갈려
전환 포기한 삼성전자와 달리, 일부 대기업-중견기업들 가속도
올들어 11곳 분할 끝냈거나 추진중



기업들이 지주회사 규제 강화를 피해 지주회사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백지화로 상법 개정안 입법 전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하려던 기업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상장사 중 올해 들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분할을 완료했거나 추진 중인 기업은 11곳이다. 지난달 크라운해태제과와 APS홀딩스 등이 인적분할 후 재상장을 완료했고 매일유업과 오리온 등이 재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달 25일엔 롯데제과 롯데쇼핑 등 롯데그룹 4개 계열사가 각각 이사회를 열고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분할과 분할합병을 결의했다.

덩치 큰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비상장사까지 합하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 중인 곳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낯선 기업들까지도 ‘홀딩스’라는 이름을 달고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지주회사는 162개로 전년 같은 기간 140개보다 22개가 늘었다.

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 때문이다. 인적분할을 통해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면 사업회사가 가진 자사주 비율만큼 지주회사도 새로 주식을 배정받는다. 현행 상법에서는 이 과정에서 원래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의 의결권이 다시 살아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금지해 이 같은 ‘자사주의 마법’을 차단한다.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배주주의 지분이 높지 않은 기업들이 자사주 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다. 여기에다 7월 1일부터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주회사 자산 요건이 종전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지난달 인적분할에 나선 매일유업과 오리온은 자산 규모가 각각 1929억 원, 3290억 원으로 7월 이후로는 지주회사 전환이 불가능하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자산 규모 기준 1000억 원 막차를 타려는 기업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 중인 기업들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 전에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포기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경영권 승계와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는 다른 기업들도 삼성의 행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기업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포기 과정과 그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자사주 처분 규제가 부활하면 정책을 신뢰한 기업만 손해를 보게 된다”고 우려했다.

신민기 minki@donga.com·이샘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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