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그들이 우리를 중독시키는 이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17-04-29 03:00 수정 2017-04-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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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조장혁 ‘중독된 사랑’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흑색선전이 정말 대단합니다. 모든 대선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저래도 되나? 완전히 막장이구먼!”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대방들을 극렬하게 비방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흑색선전이 다른 어떤 논리나 비전 제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볼 때나 생각할 때, 인간의 뇌는 맛있는 것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됩니다.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된 부분이죠. 그런데 그 후보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을 계속 보여주면 뇌의 활동은 달라집니다.

흑색선전에 계속 노출되면, 아직도 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도 그 후보를 언급할 때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된 뇌의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게 됩니다. 논리는 아직 그대로인데 감정은 변한 것이죠.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그 후보를 지지하지 않게 됩니다. 논리는 감정의 지배하에 있으니까요.

정치적 판단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 인간의 정치적인 판단이 얼마나 논리적, 혹은 합리적일지에 대해서 의혹은 있지만 말입니다. 뇌 과학계에서 인간의 정치적 판단의 합리성을 알아보려는 실험들은, 합리성의 여부보다는 정치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해내는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관적인 정치적 판단을 잘 못합니다. 익숙하지 않고,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이 기존 정파들의 신념과 일관적으로 잘 일치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나 정치에 중독된 사람들은 매우 일관된 정치적 판단을 합니다. 자신이 속한 정파의 신념에 따라 일관된 판단을 합니다. 합리적이지는 않을 수 있어도 일관적이기는 합니다.

인간의 뇌에는 ‘기본상태망’이라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영역은 쉴 때나 별생각 없이도 할 수 있는 매우 익숙한 활동을 할 때 활성화되고, 집중해서 과제를 수행할 때에는 비활성화되죠.

보통 사람들의 뇌는 정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기본상태망이 정지되고,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정치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의 기본상태망은 정치적 질문을 받았을 때 꺼지지 않습니다. 늘 정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정치에 대한 생각이 기본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죠. 저는 잘 모르는데, 그 정치와 권력의 맛이 참 대단한가 봅니다. 그러니 후보들의 흑색선전은 저처럼 정치에 대해 생각할 때 기본상태망을 끄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한 노력입니다. 속 깊은 배려에 감사해야 하겠죠?

다른 것에 중독된 사람들도 그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기본상태망이 꺼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본상태망은 가족이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꺼지지 않죠. 사랑과 대인 관계에 중독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겐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니까요. 몇 개월 동안 지속된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여전히 정치보다는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매우 유익한 중독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존재이니까요.

조장혁도 이런 가사로 동조해 줍니다. 너 없는 세상 어디에서도 나는 숨 쉴 수 없다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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