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사각지대 플랫폼 노동자

동아경제

입력 2017-04-29 13:00 수정 2017-04-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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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배달원은 오토바이와 무전기 대여료, 유류비 등을 전부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동아일보]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배달 ‘앱’ 사업 등의 각광 이면에서 늘고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친한 동생이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한다며 배달대행 일을 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면서 차라리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라고 했죠. 이 일을 하면 최저시급도 보장받기 힘들거든요.”

음식배달대행업계에서 6개월째 일하는 윤모(20) 씨의 말이다. 최근 유통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플랫폼이 각광받지만,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4대 보험 가입 등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등의 O2O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고객으로부터 직접 일을 받는 일종의 개인사업자로 간주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만큼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새롭게 정립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와 정치계의 관심은 미미하다.


“편의점에서 최저시급 받는 게 낫다”

국내 스마트폰 기반의 O2O 서비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지난해 발표한 ‘O2O 마켓 리포트’에 따르면 2014년 1조10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O2O 시장은 2년 뒤인 2016년에는 2조100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 리포트는 2020년에는 O2O 시장 규모가 8조7000억 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종사자도 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정식 고용계약 없이 중개업자가 소개비를 받고 연결해주는 시스템이라 종사자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배달, 대리운전, 가사노동 등 생활서비스 관련 앱의 종류와 이용자가 계속 느는 것을 보면 종사자도 그만큼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디어 조사기관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배달 앱 이용자는 2014년 3월 320만 명에서 2015년 2월 537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업체와 이용자가 늘면서 O2O 시장은 호황을 맞은 듯 보이지만 업계 종사자들의 표정은 다르다. 서비스 소비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해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구조라 저임금 프리랜서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O2O 형태의 플랫폼 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프리랜서 형태의 노동자도 증가하게 된다. 이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식의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배달업계 상황이 심각하다. 현재 배달 건당 수수료가 너무 낮은 데다, 배달에 쓰는 오토바이와 무전기 같은 장비 대여료는 물론, 유류비까지 배달원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배달앱업계에서 실적제로 일하는 배달원의 경우 건당 평균 3000~3500원을 받는다. 현행 시간당 최저임금 6470원을 보장받으려면 시간당 2~3건을 배달해야 하는 셈.

서둘러 많이 배달해야 돈을 버는 구조지만 배달하다 사고가 나면 배달원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배달대행업체 배달원은 최근까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기 때문.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7개월간 배달대행업체에서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이모(19) 씨는 “같이 일하던 친구가 지난해 12월쯤 오토바이로 배달하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났다. 전치 2주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못 먹게 된 음식값에 오토바이 수리비, 병원비를 합쳐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이 단번에 나갔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한 배달대행업계 관계자는 “최근 배달앱업계에서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는 경우가 늘어 이 같은 사례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15년 발표한 ‘배달앱 아르바이트 고용구조와 노동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배달앱의 경우 배달원의 40% 이상이 실적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다른 업계 플랫폼 노동자 역시 근로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5월 대리기사 4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 내 산재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4.1%(17명),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1명에 불과했다.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가입자는 없었다.


정치권에서도 관심 없어
대리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거리에 앉아 있다. 대리기사는 중개 애플리케이션 이용료 1만5000원과 승객 수송 건당 10~20%가량 중개료를 업체에 낸다.[동아일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종류만 늘어가는 심각성을 이해한 것일까. 3월 31일 정부에서도 뒤늦게나마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배달대행업체 배달원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 그러나 이마저도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자 본인이 원치 않으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적용 제외 조항 때문이다. 현재 산재보험이 가능한 특수고용직인 골프장 캐디, 퀵서비스 기사 등 6개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률도 10.9%에 불과하다. 게다가 배달원은 보험료의 절반을 피보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정치권의 관심이 닿지 않는 것도 문제다. 대선후보들조차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하다. 플랫폼 노동자와 관련한 공약을 내놓거나 언급한 대선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뿐이다. 4월 14일 정의당에 입당한 김영훈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입당 기자회견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자는 요란한 구호는 넘치지만, 디지털 특수고용노동조합 플랫폼 노동자와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대선후보는 심상정 후보가 유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력 중개의 형태가 디지털로 바뀐 것일 뿐, 택배기사나 에어컨 수리기사 등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 선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사용자의 노동자 보호책임 회피의 핑계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련 산업 종사자를 보호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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