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청각장애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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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8 14:07 수정 2017-03-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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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본의 고양이 책 전문점을 찾았을 때 표지의 사진에 이끌려 우연히 넘겨 본 사진집 '미사오와 후쿠마루'.

첫 장을 넘겨 보면 이렇게 쓰여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둥실 떠오를 때면 미사오할머니와 냥이 후쿠마루는 오늘도 밭에 나가요~'

조용하고 한가로운 시골 풍경들 속에 서로를 의지한 채 다정하게 사는 모습이 담긴 할머니와 고양이의 사진집이었다.

후쿠마루는 신비한 오드아이를 가진 흰 고양이.

둘의 첫 만남은 2003년. 할머니는 헛간에서 길냥이가 새끼 낳는 것을 보게 된다.

잘 보살펴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하나 둘 씩 죽어가는 새끼들... 그 중에 살아남은 아기 냥이를 데려와 키우게 되는데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진 냥이였다.

복이 가득 들어와 모든 일이 둥글둥글 이뤄지길 바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을 '후쿠마루'라고 지어주었다.

둘은 곧 친구가 되어 어딜가든 함께다.

밭일을 하는 할머니 곁에선 마치 도와주려는 듯 흙을 만지고, 낮잠 잘 때도 옆에 꼭 붙어 잔다.

쉬고있을 때나 식사 준비하는 때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다정하니 외로운 시골 생활에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사진들이 참 살갑다는 느낌인데 작가가 할머니의 손녀 이하라 미요코씨 였다.

역시 사랑하는 대상을 잘 이해하고 찍은 사진은 뭔가 다르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웬지 가슴 한 켠이 먹먹해 진다.

할머니와 냥이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손녀는 할머니 사진을 남기고 싶어 오래전 부터 오갔는데 이 사진집은 2011년에 발매가 됐다.

냥이 후쿠마루를 만난 지 8년 되던 해다.

흑백사진으로만 만들어진 다른 사진집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주목을 받은 사진집이다.

또 SNS에 올려진 사진들은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관심을 받았다.

그만큼 따스함과 감동이 전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도 점점 귀가 멀어져 가고 청각장애를 가진 후쿠마루 하고는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처럼 더 가까워 진다.

귀가 불편한 것 쯤은 둘 사이에 아무런 불편도 주지 않는 듯 보인다.

때론 약간 다툴 때도 있지만 저녁 때가 되면 다 풀어지는 둘 사이, 일부러 억지로 연출한 흔적이 없는 사진인데도 냥이 후쿠마루가 참 다정하다.

건강해 보이던 후쿠마루는 냥이들의 고질병인 신부전증을 오래 앓아왔다고 한다.

힘든 치료 속에서도 또렷한 눈빛을 하고 열심히 투병했던 후쿠마루는 11살 되던 2015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손녀 이하라씨는 1주기가 되던 날에야 후쿠마루의 죽음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소식에 세계 여러 사람들이 안타까워 했다.

가족 모두의 뜻에 따른 일이었는데 그만큼 슬픔이 컸다는 뜻일 것이다.

자신은 때로, 사진집을 낸 것을 후회한 적도 있었으나 그래도 영원히 남는 것이 사진이었다.

영원히 남을 사진들을 통해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후쿠마루가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사진 속 오드아이 후쿠마루가 참 사랑스럽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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