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고향이와 커피

노트펫

입력 2019-02-18 10:09 수정 2019-02-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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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펫] 커피는 사무실이라는 좁지만 치열한 전쟁터에서 매일 힘겨운 머리싸움을 펼치는 현대인들의 영혼을 각성시키는 소중한 존재다. 농부들의 정성으로 만든 밥이 배를 채우는 연료라면, 커피는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연료라고 할 수 있다.

커피는 간단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어느 정도의 비용과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카페인과 당분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스턴트 봉지 커피의 내용물을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에 휘저어서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커피는 제대로 된 커피 본연의 심오한 맛이 나지 않는다.

괜찮은 원두로 뽑아낸 커피를 종이컵이 아닌 도자기 잔에 부어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면 그동안 막혔던 아이디어도 나온다. 그리고 몸과 마음도 차분해 짐을 느낄 수 있다.

커피의 맛은 커피 원두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일부 고급 커피 중에는 동물의 배설물에서 그 원두를 추출한 것도 있다.

그런 커피의 원두는 동물의 장(腸)을 통과하면서 일부 소화되어 독특한 풍미를 내게 된다. 그런데 그 풍미가 사람들의 코와 입을 자극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흔히 ‘고양이똥 커피’로 알려진 루왁 커피(Kopi Luwak)가 그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똥 커피’는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우리 주변의 고양이들은 커피 원두를 결코 먹지 않는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배설물 더미를 뒤져도 소화가 되다만 커피 원두는 나오지 않는다. 고양이똥 커피의 원료를 생산하는 동물은 고양이가 아닌 사향고양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사향고양이들이 비싼 커피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사향고양이 중에서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밀림이 원산지인 말레이사향고양이(Palm Civet)만 가능하다.

똥에 포함된 커피 원두 때문에 유명해진 이들 사향고양이의 처지는 고달프기만 하다. 사람들은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키우고,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젖소를 키운다. 사향고양이도 원두가 포함된 똥을 얻기 위해 사람들에 의해 키워진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사향고양이는 닭과 젖소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 닭과 젖소는 정상적인 먹이를 제공받고 이를 먹지만, 사향고양이는 주식(主食)이 아닌 커피 원두가 대량 포함된 먹이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두가 포함된 똥을 만드는 것이 사향고양이 사육의 이유니까 사육 농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사향고양이에게는 상당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사향고양이는 잡식동물로 곤충이나 작은 파충류나 새의 알 그리고 나무 열매 등을 먹는다. 커피 원두를 즐기기도 하지만 그것만 먹고 영양소를 충분히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향고양이에게 커피 원두는 별식일 뿐이다. 사향고양이도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해질 수 있다. 사향고양이는 대나무만 줄기차게 먹어대는 팬더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향고양이의 변에 포함된 원두로 만든 루왁 커피와 비슷한 것도 있다. 사향족제비의 배설물에서 추출한 원두로 만든 위즐 커피(Weasel Coffee)가 그것이다. 물론 값이 비싼 커피다. 사람들의 취미와 기호는 독특한 것 같다. 굳이 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친 커피 원두를 찾아서 이를 가공해서 먹으니 말이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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