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리도그가 필요한 검은발족제비
노트펫
입력 2018-12-06 10:10 수정 2018-12-06 10:11
[노트펫] 얼마 전'‘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동물들이 잘생긴 마법사와 함께 등장하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영화 속 마법사처럼 신기한 동물들을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신기한 동물 중에는 족제비과에 속하는 것도 있다.
페럿(Ferret)은 족제비과에 속하는 동물 중 유일하게 가축화된 것으로 체중 1kg 내외에 불과한 작은 체구의 소유자다. 페럿의 역사는 예상보다 길어서 기원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는 로마제국이 유럽을 정복하기 훨씬 전이다.
북미에도 그런 페럿의 친척들이 살고 있다. 마치 검은 구두를 신은 것 같은 발을 가진 검은발족제비(Black footed ferret)로 이들은 미국 그레이트플레인스(Great Plains)가 고향이다.
세계 최대 곡창인 그레이트플레인스는 유럽계 이주민(settler)들이 유입되기 전까지는 프레리도그(prairie dog)가 주인이었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그레이트플레인스에서 대규모 농경을 시작하면서 프레리도그와 농부들은 갈등을 빚게 된다.
프레리도그들은 지하에 굴을 파고 작은 도시를 이루며 살기 때문에 농부가 키운 작물의 뿌리를 상하게 만들었다. 결국 농부들은 프레리도그를 해수(pest, 害獸)로 간주하고, 박멸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프레리도그 구제 작업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만다. 검은발족제비의 개체수를 격감시켰기 때문이다.
검은발족제비는 야행성 포식자로 낮에는 프레리도그들이 파놓은 땅굴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굴 밖으로 나와 프레리도그를 사냥하며 주린 배를 채운다. 그야말로 프레리도그가 이 야생 족제비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프레리도그 개체수의 급격한 감소 외에도 또 다른 요인이 검은발족제비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주민들이 그레이트플레인스로 유입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그곳은 인적이 드문 야생동물의 땅이었다.
하지만 들판에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전염병들이 족제비들에게 전해져서 질병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렇게 검은발족제비들에게 불행은 연이어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검은발족제비는 20세기 초반 캐나다에서 멸종하고 만다. 미국에서의 상황도 심각했다. 개체 수가 20마리 미만 수준으로 격감하기도 했지만 검은발족제비에 대한 미국 당국의 보호 덕분에 개체 수가 다시 회복 중이다.
물론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검은발족제비의 안정적인 개체 수 확보를 위해서는 당연히 강력한 보호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충분한 프레리도그들인 것 같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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