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강아지들, 미국에 데려다 주던 날

노트펫

입력 2017-10-11 15:06 수정 2017-10-11 15:06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A씨의 얼떨결 해외입양봉사기

[노트펫] "너 말고도 개를 비행기에 태워온 사람들이 있더라. 한국에서 개가 많이 오나봐?"

얼떨결에 맡은 나의 개 입양봉사는 엄마의 이말과 함께 끝나가고 있었다. 나만 개를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나와 비슷한 이들이 꽤나 눈에 띈 모양이었다.

지난달 중순 휴가를 내고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숙제가 생겼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동생이 국내에서 구조한 개들의 해외입양 봉사를 해달라고 졸랐던 것이었다.

딱히 짐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 동생의 간절한 부탁에 수락했다.

동물보호단체 사람들이 절차를 다 밟아주고, 오직 배달만 해주면 된다는 말도 마음을 움직였다.

지난달 22일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나갔다. 공항에서 만난 보호단체 사람 두 분에게서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내가 데려가야할 개는 총 3마리였다. 보검, 유키, 칸 이렇게였다.

보검이는 믹스 중형견으로 농장에서 종종 보인다는 외모를 가진 녀석이었다. 다른 두 녀석은 말티즈였다. 칸은 눈과 장애를 갖고 있었다. 아마도 전 주인에게서 학대를 받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은대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이미 개가 해외출국에 필요한 검역서류이며, 각종 접종 증빙 서류들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한두번 해본 일이 아닐테니 서류상 하자는 있을 리 없었다.

총 2개의 케이지를 써서, 보검이를 따로 넣고, 유키와 칸은 한 데 넣어서 비행기에 태워질 예정이었다. 보호단체 쪽에서는 짐이 많을 테니 공항 빠져 나갈 때 짐꾼에게 주라며 팁도 챙겨줬다.

표를 끊고 비행기에만 타면 되는 거였다.

발권도 하고 이 녀석들을 위탁수하물로 부치기 위해 찾은 대한항공 데스크.

항공사 직원이 난데 없이 직접 키우는 개들인지, 봉사단체가 보내는 개들인지 물어왔다.

보호단체 사람들이 왜 그런 것을 묻느냐면서 불쾌해 했다. 중간에 낀 난 일이 혹시 잘못돼 가는 건가 하면서 살짝 가슴을 졸였다.

항공사 직원은 캐나다로 개를 입양 보내는 것은 자기네 항공사를 이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종종 입양가는 개들을 중간에 버리고 그냥 가는 배달사고가 나서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수속을 마쳤다.

항공사 직원들이 자기들 일 더하기 싫으니 귀찮아 하나 싶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렇게 미국이나 캐나다 쪽으로 입양 보내지는 개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됐다.

비행기를 타고 13시간 뒤 미국 워싱턴DC의 관문 댈러스공항에 내렸다.

수하물 찾는 컨베이어벨트 옆에 케이지가 놓여 있었다. 동물들이 든 케이지를 가장 먼저 내리고 따로 빼놓는다고 했다.

심사대에서는 세관원이 유키가 자기의 이름과 같다면서 이런저런 말을 건 것 외에 입국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아마 이름이 같지 않았다면 더 빨리 들어갈 수 있었을 터였다.

입국장에 들어온 뒤 미국쪽 사람들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살짝 엄습했다. 아마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서 혹은 늦어서 기다리다 개들을 버려두고 가는 거겠지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개 3마리를 데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닿았다.

보검이는 이미 새주인이 정해져 있었고, 유키와 칸은 현지 동물보호단체의 대표가 맡기로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

그 장소에는 보검이를 데리고 가기로 한 여성이 나와 있었다. LA에 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검이를 선물할 예정이라고 했다.

유키와 칸 역시 마중나온 보호단체 대표가 데려갔다.

유키는 대표가 직접 키우기로 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칸은 대표의 집에서 안정기를 가진 이후 새주인을 찾아줄 것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강의 해외입양 구조를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농장에서 구조됐든 보호소에서 지냈든 새가족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입국절차가 비교적 간단한 미국으로 입양가는 것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인 중에는 한국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인 개들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입양을 원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한국의 개들을 입양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다.

인근 동물보호소에서 개를 한 마리 입양하려해도 1000달러 가까운 비용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를 한 마리 데려오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500달러 가량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워낙 개를 좋아하는 나라인 데다 입양비용이 낮고, 생명을 살려냈다는 긍지도 가질 수 있으니 나쁠 것이 없었다.

개를 데리고 온 다른 이들이 있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그런 개들이 꽤나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항 일은 마무리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열흘 정도 지났을까. 칸이 마음에 걸렸는데 새주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려 왔다. 대표가 젊은 커플이 입양했다면서 사진을 보내줬다.

우리나라에 돌아와, 한국에서 건너간 뒤 보호소에 들어가는 개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화가 제대로 됐다고 보기 힘든 개들이 많다보면 그런 일은 피할 수 없을 듯도 하다.

하지만 다음 번에 다시 이런 봉사를 의뢰받게 된다면 마다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한국에서 살다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느니 차라리 보살핌을 받는 곳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보검이와 유키, 그리고 칸 이 녀석들, 새가족과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기사는 해외입양봉사를 했던 정**씨의 사연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