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결혼의 종말을 지켜본 멍이

노트펫

입력 2017-06-21 15:07 수정 2017-06-2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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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현장에서 명화속의 멍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여기는 영국 런던의 내셔날 갤러리입니다.

영국회화가 전시된 방에 윌리엄 호가스의 '유행에 따른 계약결혼' 연작 6점이 나란히 걸려 있네요.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그림이 1편 결혼계약입니다. 현장에서 실물을 보니 한층 생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 좋습니다.

제 모습과 비교하면 그림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들로 호가스는 당시 상류사회의 결혼상을 마치 영화처럼 보여줍니다.

멍이는 1편, 2편, 6편에 차례로 등장합니다.

지난 이야기 (어려서 동물학대하면 이렇게 되는 수가 있다 잉!)에서 봤듯이 호가스는 동물권리보호의 선구자입니다.

자화상에서 애견도 주인공입니다. 화가를 상징하는 화구보다 멍이가 더 크고 중요하게 다뤄진 걸 보면 화가의 멍이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연작 1편 결혼계약은 몰락해가는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의 정략결혼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안경을 잡고 결혼계약서를 보는 사람이 신부의 아버지이고 오른쪽에 손가락으로 족보를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신랑의 아버지인 백작입니다.

돈과 권력이 서로를 탐 하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네요. 그의 앞에는 신부아버지가 준 결혼지참금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금화는 마치 진짜처럼 반짝반짝 빛납니다. 백작이 받은 돈은 오른쪽 회계사가 내민 청구서로 곧 사라질 겁니다. 창문 뒤로 보이는 호화로운 성의 건축은 비용부족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왼쪽 아래의 두 마리 멍이는 서로 목줄을 통해 결박당해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결혼식에 등장하는 멍이는 본래 충직과 정절의 상징입니다.

그림에서 두 멍이는 서로 얽혀져 있으나 관심은 없습니다. 계약결혼으로 딴 곳에 마음이 있는 신랑신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독에 걸린 신랑(목의 검은 큰 점이 매독의 상징)은 창밖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는 신랑과 등을 돌리고 앉아, 젊은 변호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신부 뒤에 있는 그림은 카라바조가 그린 '목이 잘린 메두사'입니다. 이 그림은 이태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습니다. 메두사를 보면 사람은 돌로 변합니다. 두 사람의 불행한 미래를 상징하는 복선입니다.

두 사람은 결혼직후에도 쉽게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군요. 멍이가 신랑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머리에 쓰는 모자입니다. 밤새 놀고 들어와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신랑이 간밤에 무엇을 했을지 궁금하군요.

집안도 난장판입니다. 집 바닥에 악기, 악보, 카드가 마구 버려져 있고 의자도 쓰러져 있습니다. 벽난로 뒤의 시계를 보면 벌써 12시가 됐습니다. 이 시간에 나른한 기지개를 펴는 신부는 밤새 뭘 했을까요.

손에 각종 청구서를 잔뜩 쥔 집사가 ‘이 놈의 집구석, 못 말릴 사람들이네’ 라는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갑니다. 방안에는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랑이 밤새 놀고 결제하지 않은 돈을 받으러 온 유흥업소 종업원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3, 4, 5편은 두 사람의 방탕한 생활과 불륜의 종착점을 보여줍니다.

3편에서 남편은 어린 매춘부에게 매독을 옮깁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갑니다. 해골이 책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돌팔이가 분명합니다. 매춘부의 엄마는 돈을 뜯어 낼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4편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백작이 죽고 아들에게 백작지위가 상속됐습니다. 백작부인은 남편 못지 않은 아내입니다. 머리단장을 하면서 1편에 등장했던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보여주는 것은 가면무도회 티켓 입니다. 남편의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뒤의 벽면에 에로틱한 분위기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르네상스시기 화가 코레조가 그린 제우스와 이오(1530년경, 빈 미술사 박물관)입니다. 구름으로 변한 제우스와 이오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르네상스시기 화가들은 그리스 로마신화를 빗대, 여신을 빙자한 여인의 나신을 그리기 시작하고 불륜을 묘사합니다. 금기를 깨고 표현의 영역을 확대합니다. 여기서는 두 사람간의 불륜을 암시합니다.

5편에서는 불륜현장을 급습당한 변호사가 창을 통해 도망가고 있습니다. 남편은 변호사를 죽이기 위해 왔다가 오히려 본인이 칼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방바닥에는 가면무도회에서 사용하고 가져온 가면이 널 부러져 있군요.

6편은 계약결혼의 종말을 보여줍니다. 백작부인의 남편은 칼에 맞아 죽습니다. 애인인 변호사도 살인죄로 사형당합니다. 돈도 다 탕진하고 사랑과 명예마저 잃어버린 백작부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약봉지와 새하얀 그녀의 피부가 그녀의 운명을 암시합니다. 유모가 그녀의 딸을 가슴에 안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하지만 그녀는 의식이 없습니다. 의자가 또 쓰러져 있습니다.

그림 오른편 테이블위에서는 말라비틀어진 강아지가 비열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닭고기를 훔쳐가고 있습니다.

그림 왼편에서 죽어가는 딸의 손에서 보석반지를 빼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저는 딸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계산을 앞세우는 수전노의 모습을 비열하게 음식을 훔치는 강아지로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호가스의 그림은 도덕화라고 불렸습니다, 시대를 풍자하지만 권선징악의 주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호가스는 아주 세밀하게 인물과 배경을 묘사했습니다.

'백작부인의 자살'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아버지의 구두, 강아지의 눈빛, 사람들의 머릿결, 의자의 무늬 등 하나하나 뜯어보면, 저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다음에는 세밀한 묘사의 끝판 왕인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나오는 멍이와 만나겠습니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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