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만난 오현경-손숙 “평생 연기한 내게 감독이 연기하지 말래요”

김정은기자

입력 2018-01-22 18:17 수정 2018-01-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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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3월의 눈’에서 부부로 첫 호흡을 맞추는 오현경(오른쪽), 손숙 배우. 각각 연세대, 고려대 극회 출신으로 데뷔한 지 50년을 훌쩍 넘긴 이들은 “어떤 장르보다 연극 무대에 섰을때 가장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원로 배우 오현경 씨(82)와 손숙 씨(74)가 연극 인생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선다. 국립극단의 봄 레퍼토리 연극인 ‘3월의 눈’에서 노부부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3월의 눈은 국립극단 원로 배우 고 장민호 씨(1924~2012)와 백성희 씨(1925~2016)를 위해 2011년 쓰인 헌정 연극. 오래 묵은 한옥을 배경으로 아내를 하늘로 보낸 남편 장오, 죽은 뒤에도 남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내 이순의 하루를 그렸다. 배우들의 감정과 움직임은 과하지 않고 담담하다. 그 기름기 없는 연기가 오히려 관객에게 처연함과 뭉클함을 전해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다음달 개막을 앞두고 한창 연습에 매진 중인 오 씨와 손 씨를 17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두 배우는 “둘 다 50년 넘게 무대에 섰는데 함께 출연하는 건 이번 이 처음”이라며 “연기패턴도 비슷하고 사석에서도 워낙 친한 사이라 첫 호흡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아스라한 아픔이 묻어난다. 지난해 패혈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윤소정 씨가 오 씨의 부인이자 손 씨의 절친한 벗이었다.

“아내의 친구였던 손숙은 내겐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요. 1970년대 서울 마포구 연세맨션 앞 뒤 동에 나란히 살며 거의 매일 드나들었지.”(오현경)

두 배우가 살았던 연세맨션은 당시엔 ‘배우 아파트’로 통했다. 고 백성희·이낙훈, 손숙, 오현경, 최불암 등 수많은 배우들이 거주했다. 손 씨는 “특히 오현경 선생님 댁이 배우들 사랑방이자 합숙소였다”며 “착한 소정이가 찾아오는 배우들 밥도 다 해주고 극진히 챙겼다”고 말했다.

게다가 손 씨에게 ‘3월의 눈’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고 백성희 배우가 손 씨의 국립극단 직속 선배이기 때문이다.

“2011년 ‘3월의 눈’ 초연을 관람한 뒤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에게 먼저 얘기했죠. 백 선생님이 더 이상 이순 역을 맡지 못하시게 되면 내가 하고 싶다고. 배우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3월의 눈’은 마지막 눈 감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은 작품인 걸.”

감회가 뭉클하긴 오 씨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 속 대사 하나하나마다 세상을 떠난 아내가 떠올랐다. 손 씨는 “솔직히 문득 뭉클하게 생각날 때가 왜 없겠느냐”며 “하지만 배우는 작품에 몰입해야 하니 그렇게 연결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냥 편한 건 아니다. 무대에선 ‘입신(入神)’의 경지에 든 오 씨와 손 씨지만 만만치 않은 주문을 받았다. 오 씨는 “평생을 연기해온 내게 손 감독은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하라고 계속 지적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손 씨 역시 “과거 이해랑 선생님이 ‘부단히 연습하다보면 어느새 캐릭터가 배우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는 말씀을 곧잘 하셨는데, 손 감독이 바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두 배우는 벌써부터 관객들의 반응이 기다려진다.

“지난 시즌 공연 때 보니까 관객의 반 이상은 극 중반부쯤 가서야 이순이 죽은 할머니인 걸 알더군요. 어떤 이들은 끝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걸 보고 있으면 무지 재밌어요. 실제로도 이순은 이승과 저승의 애매한 경계에 존재하는 거니까. 그래서 ‘3월의 눈’은 연기하는 배우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손숙)

2월 7일부터 3월 1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3만 5000원~5만 원.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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