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이창섭·백형훈·최우리의 뮤지컬 에드거앨런포 ‘세 개의 분노’

양형모 기자

입력 2018-01-22 13:33 수정 2018-01-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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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SMG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제 페이스북의 배경화면은 2016년 ‘에드거 앨런 포’ 공연의 커튼콜 때 사진이지요. 제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두 번째 관람이로군요. 첫 관람 때는 마이클리(포), 최수형(그리스월드), 김지우(엘마이라)였습니다.

재연 관람은 캐스팅이 싹 바뀌게 되었네요. 이창섭의 ‘포’, 백형훈의 ‘그리스월드’ 그리고 최우리의 ‘엘마이라’입니다. 포와 결혼하는 병약한 ‘버지니아’는 김사라씨였습니다.

“역시 이거야”싶은 ‘에드거 앨런 포’의 음악입니다. 두 말 할 게 있나요. 에릭 울프슨의 작품입니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설적인 밴드 알란파슨스프로젝트의 멤버죠.

록의 밑바닥과 혈관 속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작곡가의 넘버들에게서는 당연히 록의 냄새가 진동합니다. 디스토션을 잔뜩 먹은 기타의 거친 리프, 심장을 움켜쥐게 만드는 드러밍과 베이스. 배우들의 쇠파이프 같은 샤우팅.

여기에 군더더기 없는 진행이 극의 뼈대를 단단하게 세워줍니다. 곳곳에 등장하는 상징적 표현들이 과하지 않습니다.

결이 다른 세 개의 분노를 발견하고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포와 그리스월드, 그리고 엘마이라의 분노입니다.

자아가 강한 천재시인 포의 분노는 두려움을 깊숙이 감춘 분노입니다. 겉으로는 당당하나 그 속은 여리기에 생채기로 가득합니다.

반면 목사이자 영향력 있는 문인 그리스월드.

그는 열등감과 질투로 가득 찬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열등감과 질투의 대상은 에드거 앨런 포입니다. 그의 사악한 분노는 포를 비참한 삶으로 내몰게 됩니다.

사진제공|SMG

마지막으로, 포를 사랑하지만 그리스월드의 방해로 파혼하게 된 엘마이라의 분노입니다. 엘마이라의 분노는 세 가지 분노 중 가장 순수합니다. 그의 분노는 아무 것도 감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월드의 코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엘마이라는 분노합니다. 누군가의 영혼을 살릴 수도 있는 순수한 분노. 그의 분노는 약물과 알코올에 찌든 포를 일으켜 세웁니다.

인물들의 독특한 동작도 눈에 띕니다.

그리스월드의 손동작이 의미하는 바는 찾아내셨나요. 그리스월드는 종종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고, 돌리거나 흔들고, 내린 손을 맞잡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즈음에는 포 역시 같은 손동작을 보여줍니다.
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창섭 배우는 비투비의 멤버죠. 뮤지컬 ‘꽃보다 남자’, ‘나폴레옹’에 출연했습니다.

‘꽃보다 남자’에서 이창섭 배우의 연기를 처음 봤었죠. 그때보다 한결 깊어진 느낌입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멋진 남자로서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역할이로군요. 록 스타일의 넘버들도 잘 소화했습니다.

무엇보다 생을 마치는 장면에서 객석을 향한 포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스월드를 연기한 백형훈 배우도 좋았습니다. 조금 더 악역스러워도 괜찮았겠다 싶기는 했습니다만. 고음으로 질러대는 샤우팅이 완전 사이다였죠.

최우리 배우(엘마이라)의 대사 톤과 노래는 역시 훌륭했습니다.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1막과 2막에서 확실하게 캐릭터를 드러내 보였죠. 노련한 연기는 이날 무대에 선 배우들 중 가장 두드러졌습니다.

2막에서 포와 재회하는 장면은 두 번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고요.

‘버지니아’ 역의 김사라 배우의 청순한 연기도 잘 봤습니다. 성악가 출신답게 클래시컬한 창법으로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동안 다른 공연을 보고 싶지 않아질 정도로 즐거운 관극이었습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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