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뭉칫돈 “다시 보자, 스팩”

신민기 기자

입력 2019-06-18 03:00 수정 2019-06-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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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저금리시대 대안투자로 주목


저금리 시대 대안 투자 상품으로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주목을 끌고 있다. 스팩은 비상장 기업이나 코넥스 상장 기업과 합병해 이들이 코스닥에 우회 상장할 수 있도록 하는 특수목적회사다. 투자자 입장에선 합병 뒤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챙길 수 있고, 합병이 안 되더라도 원금 보전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이 때문에 국내 증시 부진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일부 스팩들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17일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11일까지 이틀 동안 일반청약을 받은 신한제5호스팩은 654.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불과 4월 중순까지만 해도 스팩 일반청약 경쟁률은 2 대 1에 미치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경쟁률이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달 31일 상장한 DB금융스팩7호는 269.8 대 1, 유진스팩4호는 300.5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보였다.

스팩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별로 1호, 2호 등 이름을 붙여 증시에 상장하는데, 현재 총 48개 스팩이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있다. 14일 현재 48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5203억1800만 원. 스팩은 상장으로 모은 자금으로 인수합병할 회사를 물색해 합병회사 이름으로 재상장하거나, 3년 이내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해산된다. 일반 투자자들은 다른 주식과 마찬가지로 주식시장에서 스팩 종목을 사고팔아 투자할 수 있는데, 투자한 스팩이 우량한 회사와 합병이 성사돼 주가가 오르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17일 가격제한폭까지 오른 IBKS제9호스팩이 그런 경우다. 코넥스 상장사 알로이스와의 합병으로 코스닥 상장이 승인되자 주가가 급등했다.

합병이 불발돼도 원금에 3년 치 이자까지 받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스팩은 합병 전까지는 투자금의 대부분을 한국증권금융에 맡겨두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원금이 보장되는 유일한 종목이다. 현재 대부분 스팩의 금리는 연 1.5% 수준이다. 다만 시장에서 중간에 비싼 값에 주식을 산 투자자는 손실이 불가피하다. 합병 후에는 일반 주식이 돼 기업 실적과 가치에 따라 주가가 움직인다. 지난해 11월 골드브릿지제4호스팩과 합병 상장해 코스닥에 입성한 반도체 부품제조업체 마이크로텍은 17일 주당 1555원에 거래를 마쳐 주가가 스팩 공모가를 밑돌았다. 지난해 실적 부진에 이어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되면서 주가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일부 스팩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투기세력의 시세 조종도 의심하고 있다. 스팩 투자 열풍에 방아쇠를 당긴 한화에스비아이스팩은 지난달 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뒤 스팩으로는 이례적으로 연일 상한가를 치더니 같은 달 13일에는 공모가(2000원)의 4배 가까운 7800원으로 주가가 뛰었다. 해당 스팩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쓰일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돌면서 폭등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합병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주가는 등락을 반복했다.

스팩은 종목별로 시총이 100억 원 안팎에 불과해 적은 돈으로도 주가가 널뛸 수 있다. 주가가 과도하게 오르면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인수 대상 기업과의 합병 비율 문제로 인수합병이 성사되지 못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스팩에 과도한 기대를 갖고 투자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팩은 약간의 수급 변화에도 가격이 급등락할 수 있다”며 “합병 계획을 꼼꼼히 조사해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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