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선 통근열차 107년만에 역사속으로

동두천·철원=서형석 기자

입력 2019-03-22 03:00 수정 2019-03-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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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철원 백마고지 오가는… 최북단 접경지역 유일 교통수단
‘휴가 군인 꽃마차’ ‘싸다싸’ 애칭, 31일까지 운행…내달 대체버스 투입



12일 오후 2시 49분 경기 동두천시 경원선 동두천역에서 통근열차 2765호가 둔탁한 디젤엔진소리를 내며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승강장엔 매캐한 디젤유 냄새와 검은 연기가 맴돌았다. 종착역은 41.3km 떨어진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역. 석 량짜리 열차 승객 60여 명은 대부분 노인 아니면 군인이었다.


이 풍경은 이달을 끝으로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1912년부터 접경지역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동두천∼백마고지 구간은 31일 열차 운행을 멈춘다.


경원선은 남북이 분단되기 전 서울(경성) 용산역에서 함경남도 원산역까지 왕복 440km를 오갔다. 6·25전쟁 후 최북단역은 연천 신탄리역이 됐다가 2012년 한 역을 연장해 백마고지역이 됐다. 서울 용산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가 현재 경원선 노선이다.

13일 오전 경기 연천군 경원선 연천역에서 백마고지행 통근열차를 타고 온 승객들이 승강장을 지나 역으로 향하고 있다. 연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그동안 용산∼동두천 구간 열차는 전동차나 고속열차(KTX)로 바뀌었고 그에 맞춰 철로도 변했다. 하지만 동두천∼신탄리 구간은 107년 전 닦은 노반(路盤) 위 철로에서, 107년 전과 차종은 다르지만 똑같이 검은 연기를 내뿜는 열차가 달리고 있다.

12일 오후 강원 철원군 경원선 남측구간의 최북단역인 백마고지역에 있는 '철도중단점' 표지판이 쓸쓸히 서 있다. 왼쪽의 선로 종점은 북쪽(원산) 방향으로 이곳에서 군사분계선까지의 거리는 통근열차 속도로 10분 정도면 닿는 11.7km에 불과하다. 철원=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이 열차는 1996∼1999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당시 철도청)가 통일호나 비둘기호로 쓰기 위해 도입한 디젤동차(CDC)다. 증기기관차, 디젤기관차의 뒤를 이은 디젤동차는 KTX의 등장으로 통일호가 퇴역한 2004년까지 전국을 누비다 경원선 통근열차가 됐다.

12일 오후 경기 동두천시 동두천역을 출발한 경원선 통근열차에 승객들이 탑승해 있다. 이날 열차 내 승객 대부분은 고령층이었다. 동두천=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천장에 낡은 선풍기가 돌고 좌변기가 아닌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화장실에 고개를 절레절레젓지만 열차표를 못 샀더라도 객차를 도는 여객전무에게 돈을 내면 살 수 있는 훈훈함이 매력이었다. 휴가 가는 군인에게는 꽃마차였고 요금이 1000원이라 ‘싸다싸(CDC)’라는 애칭도 얻었다. 김기로 동두천역장은 “열차 시간에 맞춰 승강장을 뛰어오는 어르신들 모습에서 경원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동두천∼백마고지 구간에서만 발생하는 매년 약 110억 원의 손실을 감수했다.

하지만 6·25전쟁과 2011년, 2018년 수해 때 말고는 쉬지 않던 노선이, 폭폭 소리는 없어도 연기를 풀풀 내뿜으며 달리던 옛 통일호 열차가 멈춘다. 2021년까지 지하철 1호선을 소요산역에서 연천역까지 연장하는 공사를 위해서다. 기관사는 다른 노선으로, 역무원과 승무원은 다른 역으로 옮겨간다. 그동안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대체버스가 다음 달 1일부터 역할을 대신한다. 공식적으로 잠정 운행 중단인 디젤동차는 내구연한(20년)과 비용,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다.

김 역장은 “아픈 역사와 실향민의 한이 서린 경원선의 옛 모습은 사라지지만 언젠가 북녘까지 달릴 새 열차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두천·철원=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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