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주민들 “지진 도시 오명 벗어… 정부가 피해 배상해야”

포항=박광일 기자

입력 2019-03-21 03:00 수정 2019-03-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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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환호 터뜨린 포항 주민들

텐트 생활 언제나 끝날까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임시구호소에는 이재민이 남아있다. 정부 조사연구단이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을 촉발했다고 발표한 20일 오후 임시구호소 텐트 사이로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포항=뉴시스
20일 오전 11시경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로비에서 주민 10여 명이 초조하게 TV를 지켜봤다. TV에서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을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고 정부 조사연구단이 발표하자 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부 주민은 설움이 북받친 듯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훔치던 이순오 씨(73·여)는 “지열발전소 때문에 지진이 촉발됐다는 소리를 듣자 저절로 눈물이 났다”며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이곳에서 말 못할 정도로 고생했다. 정부는 하루빨리 여기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 지진이 난 지 1년이 넘었지만 흥해체육관 임시구호소에는 이재민들이 있다. 살던 집이 복구 불능일 만큼 부서지거나 반파(半破)되지 않고 약간 손상되거나 금이 간 정도라는 소파(小破) 판정을 받아 정부 주거지원을 못 받은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주민이 대부분이다. 포항시에 정식으로 등록된 이재민은 91가구 208명이지만 거의 매일 머무는 주민은 30∼50명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여전히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임시구호소 이재민 상당수는 이날 정부 조사연구단의 기자회견을 직접 지켜보러 상경한 탓에 체육관은 대체로 한산했다. 남은 주민은 지진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생각에 얼굴이 상기됐다. 김홍제 한미장관맨션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당연한 결과”라며 “정부는 피해가 가장 컸던 흥해읍에 주택기금을 투입하거나 공공개발을 통해 우선적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포항 지진으로 하루 앞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기억하는 주민도 있었다. 당시 아들이 고3 수험생이었던 차모 씨(58·여)는 “지진 직후 다른 가족은 경북 영덕의 친척집에 머물고 아들은 수능 때문에 혼자 체육관에 남아 공부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대학생이 된 아들이 얼마 전 입대했다. 지진만 아니었다면 그 고생을 겪진 않았을 텐데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열발전소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정부 조사연구단에 포항시민 대표위원으로 참여한 양만재 포항11·15지진지열발전공동연구단 사회분과위원장은 “10년도 지난 예전에 스위스 바젤에서 지진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지열발전소가 폐쇄됐다”며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와 전문가, 업체가 지열발전소의 위험성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포항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나서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포항 지진 피해 관련 단체는 5개이며 이 가운데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단체들은 공동대책위원회 구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정부 조사연구단의 발표로 포항이 지진으로 불안한 도시라는 오명을 벗었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2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포항=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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