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여기에?” 모두가 고개저은 벌판 뛰어든 포스코

이은택 기자

입력 2019-02-12 03:00 수정 2019-0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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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신년기획 기업이 도시의 미래다]<11>포스코가 일군 송도국제도시

2003년만 해도 이제 막 간척을 마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송도(왼쪽 사진). 하지만 포스코그룹이 송도 프로젝트에 뛰어들면서 송도는 천지개벽 수준의 신도시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12월 드론으로 촬영한 송도 중심부. 가운데 보이는 가장 높은 빌딩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포스코타워송도’다. 포스코 제공
박경구 포스코건설 송도개발사업그룹 부장은 대리 시절이던 2005년 송도사업본부로 발령 났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송도에 가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생긴 땅인지도 몰랐다. 그가 맡은 일은 송도 관련 사업을 수주하고 공사를 발주하는 일이었다.

당시 포스코건설 본사는 서울 강남구에 있었다. 송도사업본부 직원 50여 명은 그해 인천 연수구 송도 개발 현장에 3층짜리 건물을 지어 거처를 옮겼다. 서른여섯 살의 박 대리도 개발 현장에 가느라 처음 송도 땅을 밟았다. 허허벌판에 펼쳐진 간척지. 현장 곳곳에 쌓인 흙더미. 해가 지면 불빛도 없어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곳. 멀리 일렁거리는 서해. 서류에서만 접했던 송도를 실제로 본 그는 아연실색했다.

“여기에 도시를 만들겠다고? 대체 누가 와서 살아?”


○ 모두가 거절한 프로젝트에 달려들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12일. 기자는 송도에 갔다. 매끄럽게 닦인 대로에 여기저기 높이 솟은 고층 빌딩과 5성급 호텔, 빽빽이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고급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센트럴파크. 고개를 돌려 보니 높이 305m의 포스코타워가 보였다. ‘송도의 랜드마크’가 된 포스코타워는 현재 잠실롯데월드타워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천루다. 여기에 포스코대우 본사가 있다. 근처에 있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은 평일 한낮에도 쇼핑과 여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불과 10여 년 전 이곳이 갯벌과 간척지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문자 그대로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한다는 상전벽해의 현장이었다.

송도를 바꾼 포스코의 노력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용경 당시 포스코건설 송도사업본부장 부사장(68)은 전국의 사업지를 물색하다 영종도와 송도 인근을 찾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겪은 회사는 기존 건설사들과 경쟁하느니 차라리 새로운 개발사업을 찾아보자고 결심한 뒤였다. ‘조 부사장이 송도에 다녀갔다’는 소문이 최기선 당시 인천시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인천시는 송도 갯벌을 매립했지만 개발에 나서겠다는 건설사가 없어 발을 동동거리던 시절이다. 20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가 큰 부담이던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잇달아 인천시의 개발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최 시장이 조 부사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때가 2001년 2월 11일이었습니다.”

조 전 부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번에 날짜까지 기억했다.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최 시장이 말했다. “송도를 좀 맡아 줄 수 없겠소?”

조 전 부사장은 인근 산에 올라가 송도를 내려다보며 최 시장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포스코는 작은 어촌 광양을 매립해 지금의 광양제철소를 지은 저력이 있다.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유상부 당시 포스코 회장, 고학봉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은 “덩치가 너무 크다”며 우려했지만 조 전 부사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그럼 해봅시다”라고 결정했다.

포스코건설은 해외 투자기업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송도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대상은 ‘송도의 심장’ 격으로 571만9000m²(약 173만 평)에 이르는 국제업무단지(IBD)로 총 사업비가 24조 원에 달했다. 포스코대우 등 다른 계열사들은 송도로 본사를 옮기는 등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며 그룹 전체가 달려들었다.


○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포스코 도시


땅을 파기 시작했지만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07년 국내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로 접어드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박 부장은 “미수금은 쌓이고 미분양이 속출하던 때라 식은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포스코건설과 함께 컨소시엄을 이뤘던 미국 투자기업 게일인터내셔널이 등을 돌렸다. 2016년부터 두 회사는 자금 조달과 투자방식을 두고 이견을 보였는데 이듬해 아파트 분양을 두고 갈등이 폭발했다. 결국 포스코건설은 게일과 결별하면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에 본사를 둔 글로벌 투자전문회사인 ACPG, TA가 참여하면서 송도 개발사업은 다시 진행 중이다.

우여곡절을 거치는 사이 송도는 빠르게 도시의 모습을 갖춰갔다. 2003년만 해도 2274명에 불과했던 송도 인구는 지난해 13만6231명으로 약 60배 늘었다. 학교 하나 없던 불모지는 명문 초중고교와 국제학교 등 43개 학교를 갖춘 교육도시가 됐다. 2010년부터 송도에 살고 있는 신승도 포스코 철강솔루션마케팅실 부리더는 “예전에는 밥 먹을 식당을 찾아서 1km를 넘게 걸어가야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완벽한 도시로 변했다”고 말했다.

도시의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기업과 오크우드프라이머호텔 등 고급 호텔, 각종 문화시설도 송도에 둥지를 틀었다. 미국 CNN방송은 2014년 송도를 ‘내일의 도시’라고 소개했다. 박 부장은 “현재 개발은 전체 면적의 약 70%가 진행됐다. 앞으로 개발 완료까지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은 송도를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상품화할 예정이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주거와 업무 교육 문화 의료 시설 등이 한곳에 모인 콤팩트 스마트시티를 건설한 경험을 토대로 해외의 도시개발 사업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 포스코와 인천의 ‘동반성장’ ▼

주니어 공학교실 운영, 포스코 직원이 ‘쌤’으로
소외아동 지원 활동도



포스코는 송도개발사업 외에도 인천지역에서 동반성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역 개발사업을 통해 기업 이윤을 창출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과 기업이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2004년부터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주니어 공학교실을 2015년부터 송도에서도 시작했다. 포스코에 다니는 엔지니어 등이 송도에 있는 초등학교에 찾아가 초등생들에게 ‘철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포스코는 한국공학한림원과 손잡고 공학교재·교구도 자체 개발해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포스코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교실을 꾸렸고 송일초 송명초 등 7개교에서 학생 832명이 이 수업에 참여했다. ‘선생님’으로 활동한 포스코 직원만 86명이다.

포스코는 2013년 200억 원을 출연해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 안에 에너지 저감형 친환경 건축물인 포스코 그린빌딩도 지었다. 태양광을 사용하는 이 빌딩에는 106가지 친환경 기술과 포스코의 고유 기술이 적용됐다. 당시 연세대와 포스코 연구진은 설계와 시공, 운영 등 모든 과정에서 협업하며 빌딩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2015년 송도로 사옥을 이전한 포스코대우는 매년 설이나 추석 등 명절마다 지역의 ‘키다리 아저씨’로 변신하고 있다. 식료품 생활용품으로 구성된 선물상자를 만들어 인천 연수구 내 저소득가정 아동들에게 전달한다. 지금까지 2500여 명의 아동이 선물을 받았다.

포스코건설도 아동복지 분야에서 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인천 지역아동센터 지원 원앤원’은 포스코건설 내 37개 부서가 인천지역 아동센터 37곳과 일대일로 자매결연을 하는 활동이다. 회사 임직원들이 매달 센터에 찾아가 도배나 장판 교체, 시설 개·보수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지도, 독서지도 등 멘토링 활동까지 한다. 아동센터 대부분이 재정적으로 열악해 포스코건설의 자매결연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천=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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