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무형’ 꺼낸 신동빈 “기존 틀 깨는 혁신 하라”

강승현 기자

입력 2019-01-24 03:00 수정 2019-0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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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복귀후 첫 롯데 사장단회의


“미래의 변화는 그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한하다. 생존을 위해선 미래에 대한 예측과 상황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31층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지난해 10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의 경영 복귀 이후 처음 열린 사장단 회의(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가장 먼저 꺼내든 단어는 ‘위기’였다.

이날 신 회장은 미래의 변화를 도덕경에 나오는 ‘대상무형(大象無形·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으로 설명하며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에게 위기의식을 가져 줄 것과 미래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당부했다. 그는 “롯데는 기존의 틀과 형태를 무너뜨릴 정도의 혁신을 이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면 심각한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며 “5년, 10년 뒤 어떤 역할을 하는 회사가 될 것이며, 고객·시장변화·경쟁사에 대한 대응 전략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도 강조했다. 신 회장은 “최근 시기를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치거나 일시적인 투자만 하는 등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면서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하며 투자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올해 롯데가 그룹 화두로 삼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도 시기를 놓친 중요 과제 가운데 하나다. 신 회장은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하면 롯데는 첨단 정보기술(IT) 투자율도 더 높여야 하고 투자 분야도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롯데는 최근 외부 디지털 전문가를 연이어 영입하며 디지털 부문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롯데정보통신 윤영선 상무, 롯데e커머스사업본부 김혜영 상무 등 그룹 내 디지털 전문가들이 패널로 나서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대표단 회의에선 전례가 없던 일로 신 회장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패널들은 “디지털 부문에 필요한 예산과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빠른 실행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회의 초반부에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최원식 한국사무소 대표가 미래 전략 수립에 대해 강의했다.

신 회장은 사업 영역 확장이나 새로운 도전을 독려하기도 했다. 향후 그룹 계열사들의 대형 프로젝트나 인수합병(M&A) 추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미국 등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화학 부문을 중심으로 유통, 식품 등 롯데의 해외 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성공보다 ‘빠른 실패(fast failure)’를 독려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며 ‘도전과 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부진한 사업에 대해선 과감한 합리화 작업을 단행할 것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침체 기업의 대명사였던 마이크로소프트가 뉴 비전을 발표한 후 과감한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과 부진 사업 합리화를 통해 지난해 말 글로벌 시총 1위로 올라섰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도 혁신을 계속하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성장이 가능한 영역에 집중해야 하며, 사업 합리화 검토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을 포함한 그룹 주요 경영진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18년 상반기 VCM(1월) 이후 1년 만이다. 롯데는 지난해부터 1년에 두 번 모든 계열사가 모여 현재를 평가하고 향후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이날 회의는 그룹 주요 경영진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이후 신 회장이 주재하는 만찬이 열렸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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