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승계시 상속세, 한국이 세계 최고… 경영권 포기 지경”

이은택 기자

입력 2018-10-17 03:00 수정 2018-10-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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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50%→25%로 낮춰달라” 호소, 실제 최고세율 65%… 日보다 많아
佛 11.25%-獨 4.5%-벨기에 3%… 선진국들 적극적으로 세금 줄여
콘돔 세계점유율 1위 ‘유니더스’, 50억 상속세 감당 못해 회사 팔아


#1. 1973년에 세워진 한국 기업 유니더스는 콘돔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2015년 말 창업주 고 김덕성 회장이 별세한 뒤 아들 김성훈 전 대표가 최대주주가 돼 기업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유니더스 경영권은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약 50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 때문이었다. 직전까지도 김 전 대표는 세금 분할납부를 신청하며 경영 의지를 밝혔지만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해 회사를 팔았다.

#2. 국내 광통신 소자 부문 1위였던 우리로광통신은 2013년 투자자문업체 인피온에 경영권이 팔렸다. 1998년에 회사를 세운 고 김국웅 창업주가 2013년 별세한 뒤 유족들에게 140억 원의 상속세가 부과됐기 때문이다. 세금 낼 돈을 마련하지 못한 유족들은 결국 회사 경영을 포기했다.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제비교를 통해 본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제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냈다. 경총은 “가족에게 기업을 물려줄 경우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총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직계비속에게 적용되는 상속세 최고세율은 한국(50%)이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2위다. 보통 기업 상속은 주식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형태로 이뤄지는데 이 경우 한국은 최대 30%의 할증이 적용된다. 이를 고려하면 실제 부담해야 하는 최고세율은 한국(65%)이 일본(55%)보다 높아진다. 프랑스는 실부담 세율이 11.25%, 독일은 4.5%, 벨기에는 3%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은 기업 상속 시 부담해야 하는 세금을 적극적으로 줄여나가는 추세다. OECD 35개 회원국 중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13개국은 직계비속(아들이나 딸)이 기업을 상속 받을 때 상속세를 안 낸다. 영국, 스페인 등 13개 국가는 세율은 낮춰주거나 큰 폭의 공제 혜택을 준다.

예를 들어 총 200억 원 규모의 기업을 배우자에게 90억 원, 아들에게 주식 100억 원, 딸에게 기타 자산 10억 원으로 나눠 물려준다고 하자. 한국은 총 27억9000만 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같은 상속이 독일에서 이뤄지면 상속세는 5억4000만 원, 영국은 2억1000만 원이다.

경총은 기업 상속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현재의 50%에서 절반인 2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손이 가업을 이어 장기적으로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고 회사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200년 이상’ 역사를 지닌 장수기업이 일본에는 3113개, 독일에는 1563개가 있다. 특히 일본은 경쟁력 있는 부품소재 업체들이 100년 이상씩 존속하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쌓고 있다. 1917년 설립된 일본 기코만 간장의 발효 기술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미생물 검사에도 쓰이고 있다. 경총은 “기업 승계는 단순한 부(富)의 이전이 아니라 일자리와 기술력의 이전이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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