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이 줄여버린 일자리… 저소득층만 더 힘들어졌다

김준일 기자 , 최혜령 기자 , 박재명 기자

입력 2018-05-25 03:00 수정 2018-05-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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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격차 역대 최악]

고소득 가구와 저소득 가구의 격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것은 최저임금을 높이면 소득이 적은 쪽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정부의 생각이 현실에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가 고용을 줄이면서 취약계층이 타격을 입은 반면 성과급이 늘어난 상위 계층의 소득이 급등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해졌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려 그에 따른 부작용이 확인된 만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물가 오르는데 저소득층 수입은 감소

소득계층 간 격차가 벌어진 원인을 단순하게 말하면 저소득층이 과거보다 적게 버는 반면 고소득층은 많이 벌기 때문이다. 올 1분기 하위 20% 가구의 월 소득은 128만6702원으로 2012년(120만9247원)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이와 달리 고소득 가구는 가구원이 다니는 기업의 실적이 좋아져 성과급이 늘면서 소득이 크게 늘었다. 일부에선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이 올라가면서 여기에 연동되는 성과급이 함께 오르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정부는 하위 20% 소득계층에 속하는 사람 중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20∼30%에 불과한 70세 이상 고령층이 대폭 늘면서 저소득층의 수입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중국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도·소매업과 서비스업의 일자리가 줄어 수입 격감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올 1분기 이례적으로 증가한 70대 고령층 인구가 1분위에 많이 편입됐고 임시·일용직 근로자와 고용원이 없는 음식·숙박업 자영업자 등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 1분위 소득 급감으로 이어졌다”며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도 인정하듯 최저임금 인상 이후 저소득층이 많이 근무해온 임시·일용직, 도·소매 숙박업 등에서 일자리가 사라졌다. 사드 보복 여파로 서비스업 가운데 한계 상황에 직면한 자영업자가 많았는데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올리는 바람에 일자리가 줄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정부는 건설업 일자리가 줄어 저소득층 수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집값을 잡는 데 치중해온 정책의 영향으로 건설업이 위축된 측면이 있는 만큼 부동산정책의 나비효과가 양극화를 키운 셈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건설업이 구조조정 영향에 들어오자 지방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산업생태계를 재구성하고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면 소득 하위 근로자들에게 큰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임금 무차별 인상 대신 빈곤층 선별 지원 필요

저소득층의 수입이 이례적으로 줄어든 만큼 이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정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가계 동향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소득을 늘려주려 해도 민간에서 임금을 늘릴 여력이 없는 한 고용만 줄어드는 정황이 드러났다. 현재의 정책을 강행한다면 정책이 효과를 내기도 전에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이 쓰러질 판이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부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이 비판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소득층 소득 감소와 일자리 감소는 단순히 기저효과로 설명할 수 없다”며 “당장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최저임금 인상폭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려면 일하는 사람에게 지원금을 주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들 중에는 실제 빈곤 가구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은 만큼 저소득 가구를 선별해서 지원금을 주면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 중 70% 정도가 중산층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의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고용이 부진한 음식업과 도·소매업도 경기가 살아나야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정부가 근로자에게 초점을 둔 지원책 대신 기업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최혜령·박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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