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고양이 털이 날릴 때 봄이 왔음을 안다
노트펫
입력 2018-03-23 12:07 수정 2018-03-23 12:07
[노트펫] 자꾸 코가 간질간질하다. 침대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얼굴에 자꾸 뭐가 붙어서 살랑거리는 느낌이 든다.
결정적으로, 아리가 푸드득 몸을 털 때마다 공중으로 털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뿜어져 나온다.
아무리 청소기를 돌리고 눈에 보이는 털 뭉치를 버려도 온 집안에 보이지 않는 하얀 털이 뒤덮고 있는 느낌이다.
평소에 고양이털에 전혀 예민하지 않은 나조차 이런 느낌이 들 정도라면…… 그래, 봄이 온 것이다.
원래 고양이들은 계절이 바뀌는 봄과 가을에 털갈이를 하지만 집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계절의 변화를 크게 체감하지 않기 때문에 1년 내내 털갈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 고양이들도 물론 1년 내내 털이 빠지기는 하지만 확실히 봄, 가을이 오면 그 양이 확연히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코숏인 제이는 털갈이 때마다 체감되는 정도가 그리 심하지는 않은데, 아리를 보면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겨울 내내 포근하고 빽빽한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던 아리는 날이 따뜻해지자 그 털을 다 벗어버린 뒤 시원하고 가뿐한 여름용 털을 장착하고 있다.
덕분에 털이 미친 듯이 빠지는 것은 물론, 몸의 털이 아직 고르지 않고 삐죽삐죽하여 다소 웃긴 모습이 되었다.
집에 놀러온 친구들도 아리를 보면 입을 모아 “왜 이렇게 작아졌어?” 하고 물었다.
살이 조금 빠진 감도 있지만 실은 털이 빠진 것이다.
까만 옷을 입고 와서 가만히 앉아 차만 마시던 친구가 집에 갈 때쯤이면 하얀 옷이 되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냥 집안이 공기 반 털 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털갈이 시즌을 맞이하여 지난 주말에는 고양이 목욕을 시켰다.
털갈이 시기의 고양이털은 자주 빗질하고, 가끔 목욕시키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아리는 빗질하는 것은 좋아한다. 물론 털을 다 밀어주는 미용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고운 털은 보존시켜주고 싶기 때문에.
나는 청소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인데, 이 시기만큼은 자진해서 청소기를 돌린다.
며칠에 한 번씩은 이불도 털어주어야 한다.
아리 스스로도 열혈 그루밍을 하기 때문에 헤어볼 방지 영양제를 먹이기도 한다.
여러 모로 집사가 부지런해져야 하는 시기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사하면서 깨끗한 베란다에 놓은 캣타워도 드디어 제 용도를 다하고 있다.
제이는 베란다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가서 창밖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내 눈에는 그냥 지루한 아파트 단지일 뿐인데, 고양이들의 눈에는 무언가 다른 재미있는 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살던 집은 12층이라 더더욱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층수가 낮아 집 앞의 놀이터가 아주 잘 보인다.
꽃이 피면 고양이들의 창밖 관람도 훨씬 더 즐거울 것이다.
한편 남편은 고양이들의 털을 뭉쳐서 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이의 고등어색 공, 아리의 회색 공, 달이의 노란 공. 아직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공이 주먹만 해지기 전에 완연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 엄청난 털갈이도 그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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