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삼성합병 형사 판결, 증거관계 허술” 논란

권오혁기자 , 이호재기자

입력 2017-11-24 03:00 수정 2017-1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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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민형사 판결 놓고 의견 분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 형사재판 항소심의 핵심 쟁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개입했는지 여부다. 이 부회장의 합병 도움 청탁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61·구속 기소)이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했다는 게 특검의 공소사실 요지이기 때문이다.

23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의 7번째 공판에는 삼성 임원들이 증인으로 나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경위 등을 증언했다. 앞서 재판부는 합병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한 민사소송 1심 판결과 형사재판 2심 판결을 증거로 채택했다. 합병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민사 판결과 달리 문 전 장관의 국민연금공단 압박을 인정한 형사 판결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 합병 압박 “있었다” vs “증거 없다”

14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영)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문 전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61·구속 기소)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지도권과 감독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못하게 돼 있는 규정을 어기고 합병에 찬성하도록 홍 전 본부장 등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 것이다.

형사 재판부는 또 국민연금공단 측이 삼성에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을 조작해 국민연금공단이 ‘가액 불상’의 손해, 즉 정확한 액수를 측정할 수 없는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10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함종식)는 삼성물산의 옛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 무효 소송에서 합병의 목적과 절차가 합법적이었다고 판결했다. “합병 비율이 주주들에게 불리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합병 비율이 다소 주주들에게 불리했다고 해도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결정에 대해 “거액의 투자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배임적 요소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민사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한 증거도 없는 것으로 봤다. “합병 무렵 최광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합병의 찬반 결정 과정에 복지부나 기금운용본부장의 개입을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 정황·추정 진술에 기대 유죄 판결

문 전 장관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합병 관련 지시를 전달받지 않았기 때문에 ‘범행의 동기’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박 전 대통령의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는 지시가 있음을 적어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 판단의 근거는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술이었다. 예를 들면 최원영 전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59)이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합병 문제를 챙겨보라는 지시를 받았고, 노모 선임행정관에게 상황을 파악해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 근거 중 문 전 장관이 직접 박 전 대통령에게서 합병 관련 지시를 받았다는 구체적인 진술도, 물증도 없었다. 김모 전 청와대 비서관은 1심 법정에서 “최 전 수석이 문 전 장관에게 박 전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하고 합병이 성사되도록 하라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런 정황 진술에 기대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반면 민사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이 자체적인 투자 판단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보이고 합병과 관련한 의도성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청탁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공단에 합병 찬성 압박을 넣은 것으로 보는 형사 재판부의 판단 및 특검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됐다.


○ “형사 재판 증거관계 허술” 논란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민사보다 훨씬 더 엄격한 증거 법칙과 높은 증명력이 요구되는 형사재판이 증거 관계를 허술히 다룬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형사 재판부가 정확한 손해 금액을 산정하지 않은 채 국민연금공단이 피해를 본 것으로 인정한 게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령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민사보다 형사재판이 더욱 엄격하며 증거능력을 더욱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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