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하정민]이코노미석의 불평등 경제학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입력 2017-05-01 03:00 수정 2017-05-0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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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페인 스튜디오 제공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캐틀 클래스(cattle class)’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소 떼를 몰아넣은 곳이란 뜻이다.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며 ‘소 떼’가 된 기분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길고 지루한 탑승 과정, 비좁고 불편한 좌석, 붐비는 화장실…. 게다가 창가 좌석에 앉으면 짐을 부리거나 좌석에 앉을 때마다 딱히 잘못도 없는데 연신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비행 내내 등받이를 한껏 젖히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주변 승객을 만난 날에는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다. 커튼으로 가려진 비행기 앞부분을 보노라면 ‘언제쯤 1, 2등석에 탈 수 있을까’라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들뜬 마음으로 탄 비행기가 계급사회의 축소판임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승객 강제 퇴거로 거센 후폭풍에 휩싸인 유나이티드항공(UA) 사례는 하차 승객 선정 기준에 대한 논란도 남겼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UA는 항공권 가격과 탑승 빈도에 따라 자사 이익에 가장 도움이 안 되는 승객 4명을 정했다. 그중 1명이 베트남계 의사 데이비드 다오 씨다. 얼핏 보면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한 듯하나 고객의 강한 심리적 반발과 저항이 따른다. ‘다른 이보다 싼 티켓을 샀으니 내리라’는 주장을 순순히 따를 고객이 몇이나 될까.

캐나다 토론토대 캐서린 드셀스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노턴 교수는 2016년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2010년경 한 항공사의 비행 데이터 100만∼500만 건(항공사 요청으로 비행 건수와 이름을 밝히지 않음)을 분석한 결과 1등석이 있는 비행기에서는 욕설, 폭행, 기물 파손, 승무원 지시 불응 등 ‘기내 난동(air rage)’이 1000회 비행당 평균 1.58회 발생했다. 1등석이 없는 비행기에서는 이 수치가 0.14회에 그쳤다.

1등석의 존재는 1등석과 3등석 고객 모두의 난동을 높였지만 그 양상은 많이 달랐다. 1등석의 난동은 타인에 대한 ‘공격적 행위(belligerent behavior)’로 표출된 반면 3등석은 혼자 분노, 불공평, 좌절, 박탈감을 드러내는 ‘감정적 폭발(emotional outburst)’이었다. 전자의 극단적 예가 ‘땅콩 회항’이나 ‘라면 상무’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항공사뿐 아니라 최근 놀이공원, 영화관, 병원 등에서 가격 차별화 정책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줄을 서지 않아도 바로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 중앙의 좋은 좌석에 더 비싼 값을 매긴 각종 공연장과 경기장, 숙련의가 진찰하는 특진…. 단순한 은유인 줄 알았던 영화 ‘설국열차’의 장면이 시시각각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좇는 행위는 당연하다. 그러나 고객이 더 많은 돈을 내도록 일부러 불평등을 자극하는 기법에는 사건, 사고의 위험도 따른다. 주재우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가격 차별화로 인한 경제적 효용과 그 반대급부의 대차대조표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에게 불공정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운용의 묘를 찾지 못하는 기업과 조직에 미래는 없다. 구성원의 반(反)사회적 행동은 결국 사회 전체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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