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가 어떻게 살인을”…화성 8차 범인을 기억하는 주민들

뉴스1

입력 2019-10-07 12:15 수정 2019-10-0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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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어, 걔가 그랬을 리 없어”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징역까지 산 윤모씨(52)를 기억하는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윤씨를 두둔하고 나섰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알려진 8차 사건도 자신이 한 짓이라고 자백하면서 당시 범인으로 특정된 윤씨가 주목받고 있다.

7일 뉴스1은 윤씨를 기억하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그의 과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윤씨를 어릴때부터 한쪽 몸을 거의 못 쓰는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기억했다. 20대가 돼서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경운기 수리센터에 취직해 잡일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어릴적 부모와 떨어져 살다가 뒤늦게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는 딱한 사정도 들을 수 있었다.

윤씨가 살던 진안리는 아파트와 상가들이 빼곡한 신도시로 변했지만, 당시 만해도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윤씨가 살던 집도 화성사건의 진범임을 자백한 이춘재가 살던 마을인 진안리였다고 한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A씨는 “자기 몸 하나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인을 했겠느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며 “한 동네에서 범인이 나오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나왔다는데 화가 날 뿐”이라고 말했다.

A씨는 “경찰에 강압수사로 (윤씨가)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진실규명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만약 진범이 이춘재로 밝혀진다면 당시 경찰들에게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이춘재를 동네 선후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찌질이’로 기억했다.

그는 “이춘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 없지만, 당시만해도 동네 친구, 선후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며 “그런 사람이 흉악범이란 사실에 놀랄 뿐”이라고 더 이상의 질문을 피했다.

윤씨를 옥살이까지 하게 한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시 태안읍 진안1리(현재 진안동)에서 발생했다.

자신의 집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던 박모양(13)이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도 화성연쇄살인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듬해인 1989년 7월 윤씨가 검거되면서, 모방범죄로 결론을 냈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나온 음모, 혈액형이 윤씨의 것과 일치하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를 토대로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고 검찰에 넘겼다.

윤씨는 경운기 수리센터 직원이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던 그는 사귀던 애인이 떠나 버린 뒤 여성에 대한 원한을 갖던 중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또 자신의 신체적 특징 때문에 박양을 목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윤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20년형으로 감형돼 지난 2010년 5월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8차 사건 재판과정에서 윤씨와 일치한다는 체모 외 증거가 없어 상당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화성=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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