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저택의 경계 허물어진 곳에… 내달 개봉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신규진 기자

입력 2019-04-23 03:00 수정 2019-04-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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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를 매개로 만난 두 가족, 극단적 삶 속에 담긴 희비극 그려
송강호 ‘봉준호의 남자’ 존재감… 최우식은 팍팍한 청년세대 대변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5번째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기생충’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두 가족의 희비극이다.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공간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미술에 심혈을 기울였다. 봉 감독은 “제목과 달리 영화에는 기생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웃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50)의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가족의 삶을 비춘다. 똑같은 4인 가족이지만 이들의 공간은 극과 극. 구성원 모두가 백수인 기택(송강호)네는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역소독제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반지하. 반면 글로벌 IT기업을 경영하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화려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언덕 위 저택에 산다.

봉 감독은 마주칠 기회조차 없을 것 같은 두 가족의 접점을 ‘과외’에서 찾았다.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박 사장 집에서 고액 과외를 할 기회를 얻는다. 거기서 젊고 아름다운 안주인 연교(조여정)를 만나게 되는데….

22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봉 감독은 “경계선이 구획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는 암묵적으로 나눠진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동선이 다르다”며 “두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2013년 지인과 대화하던 도중에 양극단의 두 가족을 떠올렸다고. ‘기생충’의 원래 제목은 ‘데칼코마니’였다고 한다.

‘마더’(2009년) 이후 10년 만에 충무로로 돌아온 그의 작품답게, ‘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인 뉘앙스와 디테일로 가득 차 있는 영화”다. ‘옥자’(2017년)에 이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봉 감독은 “외국 관객들은 100% 이해하지 못할 디테일이 포진해 있다. 한국 개봉이 기다려지는 이유”라면서도 “빈부의 차이는 전 세계의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22일 제작보고회에 참여한 배우 최우식, 조여정, 장혜진, 박소담, 이선균, 송강호(왼쪽부터). 뉴시스
가족 구성원 중 엄마가 없거나 엄마만 존재하던 ‘괴물’(2006년)과 ‘마더’나, 할아버지와 손녀만 등장하는 ‘옥자’와 다르게, ‘기생충’은 전형적인 가족이 등장하는 그의 첫 영화이기도 하다. 많은 대사를 통해 ‘설국열차’(2013년)와 ‘옥자’처럼 계급과 계층 갈등을 그리면서도 가족 구성원의 삶 속에 담긴 희비를 보여준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가족들”에게 선악의 구별도 무의미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배우는 역시 송강호. ‘살인의 추억’(2002년)부터 4편의 영화를 함께한 봉 감독의 페르소나다. 빈틈이 많아 보이지만 “연체동물” 같은 적응력을 지닌 기택을 통해 소시민 연기에서 빛을 발하는 그의 장점을 살렸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받아 봤을 때 느낌과 비슷했다. 한국 영화의 진화라 할 만하다”고 단언했다. 봉 감독은 “정신적으로도 의지가 되는, 영화계의 메시나 호날두 같은 존재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규정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옥자’에서 비정규직 트럭운전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최우식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본격적으로 ‘봉의 남자’가 된 모양새. 과외를 통해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기우는 팍팍한 청년 세대의 현실을 대변한다. 봉 감독은 “우리 시대 젊은이의 모습을 품고 있다. 유연하지만 기묘하게 측은지심을 자아내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옥자’ 촬영 뒤 몸을 만들겠다는 그에게 “마른 체형을 유지하라”는 귀띔을 했다고 한다.

김상만 미술감독이 제작한 균형 잡힌 구도와 정제된 색채, 인물들의 눈을 가린 기묘한 포스터처럼, 제목 ‘기생충’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봉 감독은 “학창 시절 ‘님의 침묵’을 읽고 ‘님’의 의미를 생각해보듯, 보고 나면 ‘기생충’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5월 국내 개봉. 15세 관람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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