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카, 럭셔리 카의 ‘미래’를 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2019-08-23 03:00:00 수정 2019-08-2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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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벤틀리가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EXP 100 GT 콘셉트카. 벤틀리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휴양도시 몬테레이는 매년 8월이면 세계 자동차 애호가들과 형형색색의 멋진 차들로 북적인다. 자동차 관련 행사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몬테레이 카 위크(Monterey Car Week)’가 열리기 때문이다.

몬테레이 카 위크의 하이라이트는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페블비치 골프 링크에서 열리는 클래식카 디자인 경연)다. 미국에서도 손꼽는 고급 골프 리조트에서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클래식 카들의 경연이 펼쳐지는 만큼,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객이 한 곳에 모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여러 럭셔리 및 스포츠카 브랜드가 다양한 방식으로 행사에 참여해 판매 중인 모델을 전시하고, 클래식카나 새로운 모델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무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8월 15∼18일 열린 올해 행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자동차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가치를 알리는 모델들을 선보여 많은 이의 시선을 끌었다. 럭셔리 ‘하이퍼 카’ 브랜드로 이름난 부가티는 특별 한정 모델인 ‘첸토디에치(Centodieci)’를 내놓았다. 이 차는 부가티 설립 110주년과 역사의 전환점이 된 한 모델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가티의 창업자인 에토레 부가티가 처음 자신의 이름을 붙인 회사를 세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9년의 일이다. 이후 40여 년에 걸쳐 부가티는 호화롭고 예술적이며 성능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차들을 만들었다. 부가티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빠르게 몰락해 1956년을 마지막으로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로 30년 남짓 끊어졌던 부가티의 명맥은 이탈리아의 사업가인 로마노 아르티올리에 의해 다시 이어지게 된다. 부가티의 열렬한 팬이었던 아르티올리는 상표권을 사들이고 새 모델 개발에 나서 에토레 부가티가 태어난 지 110주년이 되는 1991년 9월 15일에 완성한 차를 공개했다. 부가티의 부활을 알린 새 모델의 이름은 ‘EB110’. 에토레 부가티의 머리글자와 110주년을 상징하는 세 자리 숫자를 결합한 것이었다.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공개된 부가티 110주년 기념 모델인 첸토디에치. 부가티 제공
아르티올리는 EB110 개발과 생산에 너무 많은 비용을 쏟아 부어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해 오래지 않아 파산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다시 몰락한 부가티는 폭스바겐그룹에 인수돼 1998년부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것이 지금의 부가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뿌리는 달라도 EB110은 부가티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EB110이 아니었다면 부가티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없어서다. 브랜드 탄생 110주년이 된 올해, 그 의미와 상징성을 담아 만든 모델이 바로 첸토디에치다. 첸토디에치는 ‘110’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첸토디에치는 현재 생산되고 있는 ‘시롱(Chiron)’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롱은 2016년 등장한 뒤로 특별한 차를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다양한 특별 모델로 변형되어 소량 생산되고 있다. 첸토디에치 역시 그중 하나다. EB110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부가티 고유의 말발굽 모양 그릴이 담긴 차체 부분, 옆 유리 뒤쪽에 배치한 다섯 개의 작은 원형 공기흡입구 등 EB110의 디자인 특징을 변형해 담았다.

16기통, 배기량 8.0L, 터보차저 네 개를 더해 무려 16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엔진은 기본형 시롱보다 20kg 더 가벼워진 첸토디에치를 정지 상태에서 불과 2.4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하게 만든다. 최고속도는 안전을 위해 자동으로 제한되는 수치가 무려 시속 380km에 이른다. 부가티는 첸토디에치를 앞으로 2년에 걸쳐 열 대 한정 생산하는데, 대당 800만 유로(약 107억 원)의 가격표가 붙었음에도 이미 판매가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부가티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벤틀리를 꼽을 수 있다. 지난 7월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던 벤틀리는 페블 비치에 ‘홈 오브 벤틀리(Home of Bentley)’라는 이름의 특별 전시관을 꾸며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했다.

벤틀리가 전시한 차 중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먼저 공개된 콘셉트카 ‘EXP 100 GT’였다. EXP 100 GT는 2035년의 럭셔리 모빌리티를 주제로 벤틀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구체화한 것이 특징이다. 벤틀리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그랜드 투어링 카, 즉 고성능 럭셔리 승용차의 미래상을 엿볼 수 있는 이 차는 고전미와 현대미를 결합한 스타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P 100 GT는 최대 700km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전기 구동계를 갖추고 바람직한 미래 고성능 럭셔리 카 상을 제시한다. 벤틀리 제공
벤틀리는 EXP 100 GT를 순수 전기차로 구상했다. 현재 벤틀리 차에 쓰이고 있는 상시 네 바퀴 굴림장치 개념을 이어받아, 네 개의 바퀴에 모두 전기 모터를 달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게 했다. 벤틀리는 이와 같은 기술을 반영하면 길이 5.8m, 너비 2.4m의 거대한 차체를 단 2.5초 안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97km에 이르도록 가속할 수 있고, 최고 시속 300km까지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700km 거리를 배출가스 없이 달리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실내는 첨단 인공지능(AI) 기술과 새로운 고급 소재가 어우러지도록 꾸몄다. 조명, 소리, 향기, 공기질과 같은 탑승자 주변의 환경은 물론 탑승자의 몸에 닿는 좌석이나 실내 스크린에 표시되는 정보 등을 스스로 학습해, 탑승자의 취향이나 상태에 맞춰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AI는 학습한 정보를 무선 인터넷을 통해 저장하고 학습과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이전까지 럭셔리 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바이오 소재도 폭넓게 활용했다. 목재 장식에는 자연적으로 죽어 5000년 간 물속에 잠겨 있던 나무를 써서 만들었다. 차체를 칠한 페인트는 재활용한 쌀 겨에서 추출한 물질을, 일부 내장재에는 와인을 생산하면서 부산물로 얻은 소재를 가죽처럼 보이도록 가공해 사용했다. 영국산 크리스털과 양모, 면 등 새롭고 친환경적인 소재를 폭넓게 사용했다.

럭셔리 카는 언제나 소유한 사람들에게 독특하고 개성 있는 ‘나만의 차’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만들어진다. 그런 차들의 특별함은 단순히 소재, 디자인, 꾸밈새, 성능이라는 개별 요소만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요소가 하나의 주제로 세련되게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소유한 사람에게 자신만의 기준을 채운다는 만족감을 주도록 구현되어야 한다. 페블 비치를 빛낸 여러 럭셔리 브랜드의 새 차들은 이 같은 럭셔리 카의 속성이 꾸준히 발전하며 미래에도 이어지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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