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8000명,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

김지현 기자

입력 2018-04-18 03:00 수정 2018-04-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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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직원 처우개선 요구 수용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최우수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왼쪽에서 네 번째) 등이 17일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서울가든호텔에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의 직접 고용에 합의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제공
삼성전자서비스가 90여 개 협력업체 서비스기사 등 직원 약 8000명을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17일 전국금속노조와의 막후 협상 결과를 공개하고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한편 노사 양측이 갈등 관계를 해소하고 미래지향적인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가 지분 99.33%를 갖고 있는 자회사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와의 위탁 계약을 폐지한 뒤 직원들과 각각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채용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영업권을 잃는 협력업체 대표와는 별도로 협상해 영업권에 대한 보상을 해준 뒤 관리직 채용을 추진한다.

삼성 측은 최근 몇 년간 협력사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주장해온 노조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가를 거쳐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에 출석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 문제를) 한번 챙겨 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들은 2013년부터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벌여 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삼성이 노조 설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혐의를 수사 중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최근 정세를 당연히 감안한 것도 있지만 수사를 피하기 위한 꼼수는 결코 아니다”라며 “사회적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사회 친화적으로 변화하려는 과정 중 하나”라고 했다.

이번 합의로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삼성의 인사 방침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조)에 소속된 노조원 600∼700명이 원청업체 정규직으로 전환됨에 따라 노조도 자연스레 승계된다. 노조가 임단협 창구 역할을 하게 되면 직원들의 처우, 특히 수리 실적에 따라 매달 불규칙했던 급여 문제 등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나두식 지회장은 이날 결정에 대해 “삼성그룹 무노조 경영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라며 “삼성그룹의 감시자 역할을 하고 삼성그룹 노조활동을 확장해 노동자 중심의 삼성그룹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삼성은 특별히 기존 노조 관련 기조는 바뀔 게 없다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에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비롯해 삼성물산·증권·생명·SDI·엔지니어링·웰스토리·에스원 등 8개 노조가 활동 중이다. 그러나 각사의 임단협은 이들 노조가 아닌 사원협의체가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에선 삼성전자서비스가 이번에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사 직원들을 고용하는 대신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을 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물꼬를 튼 파격적인 결정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비슷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삼성 내 다른 계열사는 물론이고 다른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사내 하청 근로자의 직접채용 움직임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대한민국 노동 현실의 가장 어두운 부분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나서서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조치는 큰 의미가 있다”며 “삼성의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바람 속에 주요 기업은 별도 자회사를 세워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표적으로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 자회사를 세워 103개 홈센터 직원 52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직접채용했다. 파리바게뜨도 올 초 자회사 해피파트너즈를 설립해 제빵기사 5300여 명을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하는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다만 전국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사장들과의 합의 과정이 남아 있어 난항도 예상된다. 이날 한 협력업체 사장 A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뉴스를 보고 알아서 충격을 받았다”며 “하청업체라는 이유로 평생을 일궈온 회사를 하루아침에 폐업해야 하는 건 너무한 조치 아니냐”고 반발했다. 그는 “정부가 주문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에는 공감하지만 우리 직원들은 우리 회사의 정규직이었다”며 “직원 중 고령자들은 이번 정규직 전환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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