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냐 허세냐… 강남 재건축 ‘럭셔리 경쟁’

주애진기자

입력 2017-11-24 03:00 수정 2017-1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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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특화설계 이후 유사요구 봇물

“반포주공 1단지에 적용될 특화설계가 화제가 되면서 재건축 조합원들의 눈이 높아졌어요. 이왕이면 우리도 좀 더 고급 아파트를 갖고 싶은 거죠.”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의 재건축조합은 최근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에 설계 변경을 요청했다.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반포주공1(1·2·4주구)처럼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만들고 해외 유명 설계회사가 참여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조합 관계자는 “비용이 무리하게 늘어나지 않는 선에서 시공사 측과 협의해 일부 설계를 변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화려한 특화설계가 인기를 끌면서 주요 재건축 조합들이 잇따라 설계를 바꿔 고급 아파트로 꾸미겠다며 나서고 있다. 재건축을 하면서 고급 아파트로 탈바꿈하면 이미지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향후 집값을 높게 받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분양가를 인상시키고 주변 시세를 자극해 전반적인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우리도 최고급으로” 설계 변경 요구 봇물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의 재건축조합은 지난달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현대산업개발에 특화설계 적용을 요청했다. 발단은 지난달 11일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바로 옆 미성·크로바 아파트였다. 롯데건설은 이곳에 초고층동을 서로 연결하는 스카이브리지 3개를 만들고 차별화된 커뮤니티 시설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반성용 잠실진주 재건축조합장은 “이를 본 우리 조합원들도 스카이브리지나 해외 설계사가 참여한 특화설계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조합은 시공사와 설계 변경을 논의할 예정이다.

개포주공 4단지 역시 시공사인 GS건설이 설계 변경 요구를 받아들였다. GS건설은 글로벌 건축디자인회사 SMDP와 글로벌 조경회사 SWA와 손잡고 단지의 외관과 조경을 설계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 클린룸 수준의 깨끗한 공기를 제공하는 공기 정화시스템과 음성으로 조명, 난방 등을 제어하는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을 적용할 예정이다.

재건축 고급화 바람은 올 9월 말 시공사를 선정한 반포주공1단지가 불러일으켰다. 총사업비 10조 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라 건설사들이 사활을 걸고 고급 호텔 수준의 특화설계를 조합에 제안했다.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은 현대건설은 글로벌 설계회사인 HSK와 손잡고 한강의 물결을 본뜬 독특한 외관설계와 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보이는 야외 수영장인 인피니티풀, 실내 워터파크, 아이스링크 등을 제안했다.


○ 과도한 고급화로 사업성 악화 우려도

하지만 무리한 고급화가 조합원의 부담이나 일반 분양가 상승 등의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유명 설계사 참여가 과도한 ‘이름값’만 쓰는 요인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설계 변경을 협의 중인 단지들은 기존 공사비 내에서 가능한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지만 일정 수준의 비용 증가는 피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도시공학과)는 “너무 과도한 고급화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 사업 리스크가 커져 조합원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사들의 부담도 커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앞으로 압구정동, 대치동 등 굵직한 대형 사업장이 시공사 선정에 나서게 되면 여기서 더 얼마나 특별한 걸 내놔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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