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 잘 지은 엄마들 입시컨설턴트로 인생 2막

동아경제

입력 2017-11-18 13:00 수정 2017-11-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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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풍경.[조영철 기자]
불투명한 입시가 학부모 불안 자극 …  ‘아줌마 상담실장’ 전성시대

“우리 학원 상담실장님 큰아들은 의대 졸업했고 작은 아들은 외교관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생 아들을 둔 학부모 A씨는 최근 서울 강남 한 학원에 상담하러 들렀다 접수창구 직원에게 이런 귀띔을 들었다. 다른 학원에서 만난 상담실장도 “우리 애가 서울대를 다니는데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요…” 하면서 자연스레 자녀의 ‘스펙’을 과시했다. 그는 “알고 보니 대치동 학원에서 상담실장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자녀를 최상위권 대학이나 의대에 보낸 중년 여성이더라. 그중 한 분이 내게 ‘아이 잘 키우면 어머니도 나중에 저처럼 이런 일 할 수 있어요’라고 하는데,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본 기분이었다”고 했다.

서울 강남에서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이른바 ‘돼지엄마’가 사교육계의 큰손 구실을 한다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이들이 ‘최신’ 입시 동향을 분석하고 ‘최적’의 전형방법을 찾아낸 뒤 ‘최고’ 강사로 사교육팀을 구성해 자녀를 명문대에 합격시키는 능력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최근 강남 사교육계는 이들을 속속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특히 ‘사교육 1번지’에서 전업주부로서 자녀들이 막 대학입시를 끝낸 중년 여성이 가장 인기가 높다고 한다.

과거에도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어머니들이 모여 대치동에서 입시 전문학원을 운영하는 등 사교육업계에 뛰어든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의 대학입시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로 진행되던 때에는 아무래도 ‘엄마’보다 ‘학원 강사’의 영향력이 컸다. ‘엄마 전문가’가 각종 입시학원 전면에 등장한 배경에는 최근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고 있는 이른바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입시’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돼지엄마’ 경험을 직업으로 승화

두 자녀를 명문 사립대에 보낸 뒤 입시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한 ‘아줌마 상담실장’은 “학종의 특징은 아이의 성적뿐 아니라 잠재력도 평가하는 것이다. 이 입시 아래서는 전공적합성,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창의성, 호기심 등 계량화할 수 없는 자녀의 수많은 자질이 모두 평가 대상이다. 이걸 가장 잘 알고 준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엄마이다 보니, 학종 입시를 치러본 엄마의 전문성은 학원 강사를 뛰어넘는다”고 자평했다. “특히 강남 대치동 같은 곳에서 온갖 정보를 분석해가며 아이를 최고 대학에 보낸 엄마라면 믿을 만하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 아니겠나. 그러다 보니 학부모가 먼저 ‘아줌마 상담실장’과 의논하기를 원하고, 점점 그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는 것”이라는 게 이 입시컨설턴트의 생각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엔 엄마들이 직접 이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대학입시가 끝난 뒤 개별 학원장들이 정보력과 인맥 좋기로 유명한 동네 엄마들에게 연락해 ‘부업으로 상담 한번 해보라’고 권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엔 자녀 입학 실적 등을 자신의 포트폴리오로 삼아 여러 학원에 급여와 계약 조건 등을 타진하며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엄마가 점점 늘고 있다. 대치동에서 수학전문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이 지역 전업주부들은 학원 강사 못잖은 ‘고스펙’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이 사회생활 욕심 같은 걸 다 제쳐둔 채 10여 년간 자식 교육에만 ‘올인’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나. 최근 새로운 시장이 열리니 ‘그동안의 경험으로 내 일을 해볼까’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줌마 상담실장’이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복귀 수단 구실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입시컨설턴트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강남 엄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문직”이라며 “똑똑한 여성이 자신의 전문 영역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는 셈”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학원과 중년 여성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관련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모양새다. 또 다른 입시컨설턴트는 “자녀 교육에 성공한 엄마가 입시학원 등에 취업해 다른 엄마들의 멘토 구실을 하는 사례가 늘어난 건 분명하다. 최근에는 아이를 대학에 보내지 않은 엄마들까지 입시컨설팅 세계에 뛰어들면서 ‘엄마 입시전문가’ 수가 더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실적’이 없어 기존 업체에 취업하기 어려운 이들의 활동 무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고 한다. 이 컨설턴트는 “SNS에 익숙한 30, 40대 주부는 각종 입시정보를 수집, 분석, 정리한 뒤 자기 자녀에게 적용한 체험담을 SNS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 세계에서 ‘능력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 자연스럽게 독자가 늘어나고 이를 발판으로 유료 입시 상담을 할 기회가 생긴다”고 밝혔다.

이들의 강점은 생생한 학원 정보 제공이라고 한다. 한 학부모는 “요즘에는 돈이 있어도 못 다니는 학원이 많다. 입학시험이 어려워서다. 이런 학원 입학시험에 합격하려고 다른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하는 사례도 적잖다. 현재 초중고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바로 이 분야의 정보에 특화돼 있다. ‘우리 애가 지난달 ◯◯학원 입학시험을 치렀다’ 같은 글을 올려 다른 엄마들의 관심을 끈다. 심지어 자기가 사는 지역 주변에 있는 유치원의 장단점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엄마도 있다. 요즘 입시가 유치원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정보 전쟁도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전했다.


‘깜깜이 입시’는 언제 사라질까
서울 강남에서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이른바 ‘돼지엄마’가 사교육계의 큰손 구실을 한다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이들이 ‘최신’ 입시 동향을 분석하고 ‘최적’의 전형방법을 찾아낸 뒤 ‘최고’ 강사로 사교육팀을 구성해 자녀를 명문대에 합격시키는 능력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동아 DB]

서울 강남 등 ‘사교육 1번지’에서 자녀를 키우며 막대한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엄마들이 그 비용을 조금이라도 보전하려고 사교육업계에 뛰어드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 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대치동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받는 각종 사교육은 비용이 상상을 초월한다. 주요 과목 선행에 예체능 과외까지 시키다 보면 넉넉한 집안이라도 힘에 부친다. 얼마 전 수학학원 프로그램을 하나 더 시키라고 권하는 입시컨설턴트에게 ‘아무래도 힘들겠다’고 하자 ‘지금 돈 때문에 아이에게 필요한 걸 안 해주면 나중에 후회한다. 몇 년만 더 고생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간 뒤 ‘메이크업’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물론 학원 상담실장 등 입시업계에 진출한 여성이 처음부터 큰돈을 버는 건 아니다. 올해 자녀를 서울 지역 사립대에 보낸 뒤 강남에서 학원 상담사로 일하는 한 여성은 “주 6일, 하루 7시간 정도 근무하고 150만 원 안팎을 받는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내 노하우를 전해준다는 데 보람을 느껴야지, 돈만 보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상담실장’ 직함을 가진 이들의 수입도 천차만별이다. 많은 학생을 학원에 유치하고 개인적으로 입시상담회 등도 개최할 만큼 명성을 얻은 사람은 인센티브만으로도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나중에 이를 바탕으로 입시 정보 서적을 출간하거나 별도 컨설팅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도태되는 구조라고 한다. 해마다 새로운 ‘엄마 전문가’가 탄생하며, 그들의 ‘생생한 정보’가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두 자녀를 각각 명문고에 합격시키며 주위 학부모들 사이에서 ‘돼지엄마’로 통했고, 이후 자녀의 명문대 입학 실적을 바탕으로 전문 입시컨설턴트 길에 뛰어든 한 입시 전문가는 “처음 한동안은 ‘우리 애가 어느 학교 갔어요’만으로도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 하지만 그런 기간은 1~2년 남짓으로, 그 뒤부터는 다시 자녀를 대학에 보낼 때 못잖은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한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 동향을 정확히 짚어주면서 아이가 지쳤을 때 마음을 어떻게 풀어주는지, 시험 스트레스로 소화를 잘 못 시킬 때 어떤 죽을 끓여주면 좋은지 등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대학입시를 단순화해 학생과 학부모 부담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입시의 공정성을 높이고 사교육 영향력을 낮추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수능 개편안이 1년 유예되면서 ‘깜깜이’ 입시 공포는 더 커졌고, ‘학종’의 불공정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결국 학부모들은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를 말하는 사교육계 ‘아줌마 상담실장’들에게 더욱 매달리고 있다. 최근 강남의 한 입시학원이 자녀를 대학에 보낸 중년 여성을 대거 고용해 상담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사교육업계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한 학부모는 “해당 학원에 갔다 나란히 앉아 입시 상담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들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입시 상황에서 내 마음을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과 아이 문제를 의논하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잘 포착한 것 같다”고 평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7년 11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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