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자동차와 스마트폰의 대결

석동빈 기자

입력 2017-10-12 03:00 수정 2017-10-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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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구입하면 예쁜 여자친구가 생긴다는 내용의 도요타 동영상 광고. 도요타는 청년층의 운전면허 취득과 자동차 구입이 크게 줄자 애니메이션 도라에몽과 영화 ‘레옹’의 주인공인 장 르노를 등장시켜 ‘면허를 따자’는 광고 시리즈를 만들었다. 도요타 제공
석동빈 기자
당신이 운전하는 중 자녀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10명 중 7명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겠죠. 나머지 3명은 아쉽게도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대신 자거나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을 겁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라면 떠나기 싫어하는 자녀를 설득해서 겨우 데리고 나온 터라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아 창밖의 스쳐 지나가는 자연을 보며 ‘운전대를 잡고 자유롭게 방랑하고 싶다’는 꿈을 꾸는 청소년이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심리학과 진 트웽기 교수는 8월 발간한 ‘iGen’(i세대)이라는 책에서 “(미국에)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새로운 인류가 등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전의 X세대(1965∼1976년생)나 밀레니얼세대(1983∼2000년생)와도 완전히 구별되는 신종족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i세대를 2007년 탄생한 애플의 ‘아이폰’을 초등학교 때부터 사용한 1995∼2012년생들로 규정했습니다.

25년간 세대 차이에 대해 연구해온 트웽기 교수에 따르면 세대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가치관이나 행동 특징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면서 완만한 그래프로 서서히 변해 가는데, 갑자기 밀레니얼세대의 특징이 줄어들고 전에 없던 급격한 진폭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어릴 때부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스냅챗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인터넷 없이 살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직전의 밀레니얼세대도 인터넷을 하며 자라기는 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한 채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i세대는 차를 타고 어디를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귀찮아하고, 집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과거 일찍 운전면허를 따고 부모 몰래 차를 몰고 나가서 담배를 피우며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고 간절히 독립을 원하던 X세대의 청소년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X세대는 고교 시절 85%가 애인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2015년 미국의 고교생들은 56%로 크게 줄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첫 경험 시기가 늦어지고 10대의 출산율도 낮아졌다고 합니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이 1983년 이후 미시간주에서 발급된 운전면허 통계를 분석한 결과 16세의 운전면허 취득 비율은 1983년에 46%였으나 2014년에는 25%로 낮아졌고, 같은 기간 18세도 80%에서 60%로 내려갔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미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한국 일본 유럽 등 웬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공통으로 적용됩니다. 경제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2000년대 들어 일본은 청년층의 운전면허 취득과 자동차 구입이 급격히 줄어들어 자동차 보유대수가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도요타는 일본 청년층의 운전면허 취득과 자동차 구입을 유도하는 광고 시리즈를 내보내며 절박함을 표현했습니다. 한국도 신규 운전면허 취득자 중 25세 이하의 비율이 2005년 19.2%에서 현재는 11%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습니다. i세대가 구매력을 가지고 자동차를 구입하기 시작하는 10년 뒤가 암울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더 이상 멋진 디자인에 가속력이 뛰어나고 드라마틱하게 커브길을 돌아 나가는 자동차가 필요 없습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뉴욕의 도로는 마차를 끄는 말의 똥으로 뒤덮여 큰 사회문제였지만 짧은 기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됐습니다. 말의 품종 개량으로 똥을 적게 싸도록 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급속히 대중화하며 아예 마차가 사라진 것이죠.

자동차 회사가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을 열심히 개량하고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개발한다고 i세대의 관심을 자동차로 끌어올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공짜로 차를 주지 않는 이상 자동차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자동차를 스마트폰 같은 플랫폼으로 전환해 자동차 가격의 일부를 캐시백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하면 차 안에 설치된 스마트 디바이스로 광고 시청이나 쇼핑을 할 경우 일정 금액을 돌려주는 방식이죠.

법규로 허용되면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하도록 차의 외부에 전광판을 설치한 후 행인들에게 노출된 양을 측정해 광고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일종의 상업적 플랫폼이 되는 셈입니다. 자동차는 앞으로 이동수단이라는 본연의 역할만으로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를 맞을 것 같습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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