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달걀 우유 설탕 뺀 ‘건강빵’…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죠

이지훈기자

입력 2017-09-19 03:00 수정 2017-09-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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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8> 정릉시장 ‘빵빵싸롱’ 이현주 사장

이현주 씨가 자신이 만든 건강빵 ‘감자 치아바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감자 치아바타’는 ‘빵빵싸롱’의 대표적인 인기 메뉴로 감자를 갈아 밀가루와 섞어 구워낸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시장 입구에서 열 발짝 정도 들어가면 입간판이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들어가면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쪽에 곱게 포장된 빵들이 전시돼 있다. 계산대 뒤 오븐 앞에서 빵 반죽을 치대느라 여념 없는 이현주 씨(40·여)가 보였다. 17일 서울 성북구의 정릉시장에서 만난 이 씨는 베이지색 앞치마를 차려 입고 있었다. “찾아오시느라 힘들었죠. 가게가 구석에 있어서 눈에 잘 안 띄어요. 커피 한잔 드릴까요?”

그는 원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무역회사, 여행사 등에서 일하던 이 씨가 회사를 그만둔 건 2014년이다. 그는 “십수 년간 쉬지 않고 회사를 다녔는데 너무 힘들었다. 밤샘, 야근 등 정신없는 삶이 계속되다 보니 다 그만두고 ‘여유’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빵, 케이크, 쿠키 등을 좋아했던 그는 사표를 내기 전 휴직계를 내고 제빵기술을 배웠다. 회사 다니는 동안엔 격주 토요일마다 플리마켓(벼룩시장)에 나가 직접 만든 쿠키를 판매하는 것으로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처음부터 큰돈을 벌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삶의 여유를 즐기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 씨가 선택한 플리마켓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정릉시장에서 여는 ‘정릉개울장’이다. 정릉시장은 성신여대와 서경대 국민대 등과 인접한 상권이지만 유동인구가 적어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4년부터 매달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 플리마켓을 열었다.

정릉개울장은 지역 상권 부흥을 위해 상인과 주민, 30여 개 지역 단체, 인근 대학이 협력해 조성했다. 이후 이곳은 장사의 신을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 시장 반응을 살피는 대표적인 장(場)이 됐다. 그 역시 여기서 쿠키를 만들어 팔던 청년상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야심작은 수제 쿠키였다. 초콜릿 맛 쿠키, 샤보레, 마들렌 등을 만들어 정릉개울장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서 팔러 나가기만 하면 남기는 것 없이 다 팔았다. 단체주문을 문의하는 손님까지 있었다. 이 씨는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선물로 거저 받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내가 만든 쿠키를 돈을 내서 사고선 ‘맛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플리마켓에서 제과의 첫발을 디딘 이 씨는 정릉시장 신시장 사업단에서 모집한 ‘청년 인큐베이팅’ 사업에 지원했다. 개울장 판매상인 중 일부에게 시장 안 매장에서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말 자신만의 점포를 갖게 됐다.

인터넷에서 ‘빵빵싸롱’을 검색하면 ‘건강빵’이 함께 뜬다. 처음에는 쿠키류를 만드는 제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건강빵이 관련 검색어로 뜰 만큼 빵에 대한 입소문이 더 크게 난 것이다. 그의 건강빵은 ‘소화 잘되는 건강빵’으로 제법 유명하다.

이 씨는 “빵을 무척 좋아하는 나도 빵을 먹고 나면 속이 불편했다. 많이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는 빵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소금 물 밀가루만 가지고 천연발효기법을 통해 빵을 만든다. 흔히 넣는 버터나 설탕, 달걀, 우유는 넣지 않는 방식으로 속이 편한 빵을 만드는 것이다.

이 씨는 “처음엔 쿠키, 컵케이크를 주로 팔다 보니 20, 30대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찾았는데 ‘건강빵’ 메뉴가 추가된 후로는 찾아오는 손님의 연령대가 더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요즘 ‘빵빵싸롱’엔 우유,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의 엄마들뿐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는 어르신도 많이 방문한다.

입지 조건만 두고 보면 이 씨의 ‘빵빵싸롱’은 그다지 좋은 곳에 있지 않다. 반경 500m 안에 제과점만 11개(8월 기준)다. 6월엔 14개였으나 두 달 사이에 소상공인 빵집 두 곳이 문을 닫았다. 이 씨의 ‘빵빵싸롱’은 시장 입구 건너편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과 함께 문을 열기도 했다. “경쟁자가 많아서 불안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 씨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아등바등 사는 게 싫어 차린 건데 여기에서까지 남들을 이기기 위해 경쟁하고 싶진 않아요. 비슷한 빵을 팔아서 다투기보단 다른 데에선 팔지 않는 특이한 메뉴를 개발해서 팔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른 빵집과 부딪히고 싶지 않은 이 씨의 ‘착한 마음’은 ‘빵빵싸롱’을 이색 빵집이 되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앞집에서 파는 단팥빵 대신 단팥식빵을, 크림빵을 원하는 손님을 위해 크림식빵을 만들었다. 그 결과 카야잼식빵, 오징어먹물치즈식빵, 팥식빵, 크림식빵 등 신메뉴가 여럿 탄생했다. 이 씨는 “인근 빵집에서 파는 메뉴는 손님이 아무리 원해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머리 굴려서 새로운 메뉴를 많이 만들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우며 살자’는 이 씨의 철학은 함께 정릉시장에 점포를 연 청년상인들과도 공유하는 가치다. 지난해 10월 서울시 청년상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정릉시장 청년몰에 가게를 낸 청년은 이 씨를 포함해 총 4명. 이 씨가 파는 건강빵 외에도 파스타, 수제청, 수제사탕을 팔고 있다. ‘빵빵싸롱’에 청년상인이 파는 수제청, 수제사탕을 가져와 팔기도 하고 파스타 집에서 이 씨가 만든 빵을 식전 빵 몫으로 구입해 가기도 한다. 이 씨는 “서로의 상품을 대신 팔아줄 뿐 아니라 각자의 홍보, 마케팅 전략도 꼼꼼하게 체크해 준다”며 “플리마켓 때부터 함께해 와서 그런지 지금은 가족 같다”고 했다.

‘상생’을 위한 그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그의 가게 앞은 ‘불금마켓’이 열린다. 석고방향제, 향초, 냅킨아트 등 인테리어 소품뿐 아니라 천연오일로 만든 모기퇴치 스프레이 등 파는 품목도 다양하다. 전부 청년상인들이 만든 제품으로 아직 점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이 씨가 흔쾌히 가게 앞 공간을 내주는 것이다. “제 플리마켓 시절 때가 생각도 나고 그 마음을 아니까요. 또 불금마켓을 열어두면 자연스레 손님도 늘어요. 바쁠 때는 서로 돕기도 하고…. 그렇게 함께 어울리며 살고 싶습니다.”





▼“빵빵싸롱 상호 독특… 독립빵집 협동조합 만들어보길”▼


김성민 연세대 창업대학원 교수 조언


“대표님, 상표 등록은 하셨나요?”

본격적인 컨설팅을 시작하기 전 김성민 연세대 창업대학원 교수(사진)가 ‘빵빵싸롱’ 이현주 대표에게 대뜸 물었다.

이 씨가 “아직 못 했다”고 답하자 “당장 내일이라도 상표 등록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본인 브랜드를 가지고 제품을 팔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상공인, 농민이 많은데 가장 취약한 게 지적재산권”이라며 “‘빵빵싸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좋기 때문에 30만 원 아끼지 말고 당장 상표 등록부터 하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빵빵싸롱’의 불리한 입지조건을 지적했다. 가게 입구에는 중소 프랜차이즈 빵집이 한 곳 있고 시장 건너편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두 곳 있다. 게다가 정릉시장 주차장 반경 500m 내에는 11개의 빵집이 영업 중이다. 김 교수는 “두 달 만에 프랜차이즈 아닌 독립빵집이 세 곳이나 문을 닫을 정도로 이 지역 빵집의 프랜차이즈화(化)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몸집이 큰 대형 빵집에 대항하기 위해 소규모 빵집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독립빵집 협동조합’ 결성을 제안했다. 저마다 이색 메뉴를 갖고 있는 독립빵집의 장점을 살리고 프랜차이즈에 비해 구매력이나 규모가 떨어진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독립빵집들이 조합을 결성해 밀가루 등 재료를 공동구매하고 각자 대표 메뉴를 함께 만들어 팔고 노하우를 공유하면 대형 프랜차이즈에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 노원구 등에서는 독립빵집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운영하고 있다.

‘빵빵싸롱’은 건강 빵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이 대표는 “택배, 우편 요청도 여럿 들어오는데 혼자 일하고 있어서 다 응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동업자를 구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 둬 빵 생산량을 절대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소상공인 배달업체와 연계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신경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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