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연애와 사랑에까지 스며든 시장의 논리

김재희기자

입력 2017-09-18 03:00 수정 2017-09-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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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 연애를 올려놓고 연애 주체들에게 끊임없는 조율과 타협을 요구한다.―‘연애정경-신자유주의 시대 연애 인문학’(박소정·스리체어스·2017년) 》
 
책 제목 ‘정경’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정서를 자아내는 경치(情景)’와 ‘정치와 경제(政經)’라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정경(情景)을 정경(政經)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겠다는 저자의 의도가 담겼다.

사랑의 감정에 정치며 경제가 끼어들 틈새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저자는 오늘날 2030 세대의 사랑은 낭만보다는 시장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택한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봤다. 신자유주의체제가 정착한 뒤 개인이 한정된 자본을 얻기 위해 무한 경쟁하는 체제로 돌입하면서 사랑에 있어서도 개인을 자본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를 ‘연애 자본’이라 부른다. 개인이 연애시장에서 가진 외모, 능력, 건강, 매너 등 모든 조건이 연애 자본에 해당된다. 정량화할 수 없는 개인의 특징들이 점수화된다. 개인은 연애시장에서 ‘고가에 팔리기 위해’ 스스로를 계발해 연애자본을 축적한다.

‘베이글녀(귀여운 얼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성)’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등 개인을 특정 형태로 축약하는 단어들이 유행처럼 등장한 것이 연애가 ‘자본화’된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개인이 갖는 정성적 매력은 사라지고, 상품처럼 수치화되고 머리에 명확히 그려지는 매력만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엄격한 잣대로 개인을 평가하고 점수 매기는 연애의 풍토로 인해 ‘썸’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썸은 공식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둘 사이에 미묘한 무언가(something)가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썸은 확정적인 관계가 주는 부담감을 덜어주는 대신 설레는 감정은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애시장에서 자신의 연애 자본을 평가받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부담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관계의 끈은 놓고 싶지 않은 젊은이들의 세태가 반영된 것이 썸이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고분군투하며 사랑하는 장면을 보며 저자는 사회가 제공해야 할 안정적 조건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연애와 사랑을 수치화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에서 사회정책이 실패하는 지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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