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세금 더 낼 준비, 되셨습니까?

이상훈 경제부 차장

입력 2017-07-27 03:00 수정 2017-07-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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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세금은 정치다.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59조가 보여준다. 누가 얼마나 세금을 낼지는 관료들의 정밀한 계산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유권자와 납세자의 뜻으로, 때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타협의 산물로 결정된다.

정치나 세금이나 결국 선택의 문제다. 조선시대 공납 같은 착취가 아니라면 정치적 결정에 따라 세 부담을 적절히 나눠 짊어지는 게 현대적 의미의 나라살림이다. 없던 세목도 신설하는데 소득·법인세율 정도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나라살림 사정, 글로벌 흐름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새 정부의 대기업·초고소득자 세율 인상을 무조건 비판할 건 아니다. 증세를 빼면 뾰족한 복지재원 마련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전문가,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동의한다. 해외에선 관련 선례도 꽤 있다. 프랑스(5%포인트) 미국(4.6%포인트)이 2010년대 들어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렸고, 칠레(7%포인트) 멕시코(2%포인트)는 법인세율을 인상했다.

문제는 대기업·초고소득자 세율 인상만으로는 늘어나는 복지재원을 감당하기 부족하다는 점이다. 새 정부는 공약 실현에 5년간 178조 원을 쓰겠다고 하면서 재원대책은 5년간 20조 원짜리 ‘핀셋 증세’만 내놨다. 이대로라면 나머지 158조 원은 빚으로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국고채 순증 규모가 32조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빚을 2배로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중산층과 서민 증세는 전혀 없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선을 그었지만 이들의 협조 없이 재원 마련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당장 걷자는 게 아니다. 증세에도 순서가 있다. 초고소득자 지갑에 손을 댔으니 고소득자, 중산층, 서민 순으로 더 내면 된다.

세율 인상보다 비과세 감면 정비가 우선이니 ‘고소득자 감면’을 줄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침 한국에는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을 많이 깎아주는 ‘부자 감세’가 있다. 연소득 1000만 원 이하 서민은 고작 5만 원 환급받는데 연봉 10억 원 초과 부자는 115만 원을 돌려받는 제도다. 소비가 많고 소득이 높을수록 환급액이 커 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바로 ‘신용카드 소득공제’다.

애초 도입 목적은 자영업자 소득 양성화였지만, 카드 사용이 정착돼 효과가 유명무실해졌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연 공제 규모가 1조8163억 원(2015년)이니 이것만 줄이거나 없애도 웬만한 명목세율 인상보다 세수 확보에 보탬이 된다. 고소득자일수록 늘어날 부담이 커 ‘조세정의 실현’에도 부합한다. 어차피 급여 1000만 원 이하 저소득자의 92%가 카드 사용액이 적어 공제를 못 받을 정도로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신용카드 공제에 손을 대자고 말할 용기 있는 정치인이 있을까. ‘연말정산 때 뭘 돌려받나’ ‘월급생활자가 봉이냐’라는 비판 여론이 두려울 것이다. 제도의 맹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납세자를 설득해야 하겠지만, 정치권과 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당장 신용카드 공제를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대기업·부자 증세를 추진하겠다는 정부라면 이를 마중물 삼아 ‘세금은 국민 모두가 내야 한다’는 개세주의(皆稅主義) 원칙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명목세율 인상까진 못 하더라도 적어도 신용카드 공제 같은 ‘부자 감세’에 손을 댈 의지 정도는 보여줘야 한다. 이런 주장에 ‘납세자 정서를 모르는 비현실적 얘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낼 결기와 의지도 없이 큰 정부와 복지재원 확보를 꿈꿨다면 나라살림의 현실을 모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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