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보다 많은 환자수… 자가격리 활용해 의료 과부하 막아야

동아일보

입력 2020-02-27 03:00 수정 2020-02-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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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비상]
국내 확진 환자 1000명 넘어서… 코로나 장기전 대비하자


25일 오전 경북 경산시에 비상이 걸렸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61세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 환자는 이틀마다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지만 의심 증세가 있어 4일째 병원에 가지 못했다. 급히 병상을 수소문했지만 대구경북 지역에는 확진 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없었다. 그는 18시간을 버틴 끝에 다음 날 오전 4시에야 서울의 한 대형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산시 관계자는 “만성질환에 폐렴까지 악화돼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26일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284명이 늘었다. 총 1261명이다. 그러나 전국의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198개)은 사실상 포화 상태다. 민간 비지정 음압격리병상(879개)을 감안해도 환자가 더 많다. 정부는 병상을 추가로 1만 개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경증환자를 자가 격리 등의 형태로 병원 밖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 ‘병실 이원화’ 정책 필요

최근 일주일 동안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환자를 중증도에 따라 분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중증환자는 국가지정 음압병상이나 상급종합병원이, 경증환자는 공공의료원 등에서 치료한다는 것.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이원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증환자들은 병실을 찾아 헤매는 반면, 국가지정 음압병상은 확진 전 의심환자들이 차지하는 등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26일 오전 8시 기준 국가기준 음압병상 가동률은 77.6%. 하지만 국립중앙의료원 전원지원상황실이 병원들에 환자 이송이 가능한지 문의하면 다수 병상이 ‘사용 불가’로 나온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뿐 아니라 다른 질환 환자들도 병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26일 브리핑에서 “중증도 판단, 입원 배정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확진 환자가 대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추가인력 확충 등 병상 가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명확한 병실 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령자나 중증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가지정 음압격리 병상이 있는 의료기관이나 상급종합병원에 감염병과 호흡기 전문가 등이 집중돼 있어 중증환자들을 지체 없이 이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자가 격리’ 기준도 보완해야


모든 코로나19 환자를 병원에서 돌보는 것도 무리다. 지나치게 많은 의료진과 시설이 코로나19 환자에 몰릴 경우 다른 질환 환자를 돌볼 여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증상이 경미하거나 회복기의 환자들은 자가 격리시켜 경과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코로나19가 인플루엔자(독감)처럼 상시 유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조기 퇴원할 경우 접촉자처럼 14일 동안 자가 격리를 시키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방지환 중앙감염병병원 운영센터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환자를 입원시키기에는 자원에 한계가 있다”며 “경증 환자는 집에서 머물며 약물을 복용하게 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됐다면 의료 공백을 최소화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일선 병원에선 접촉자가 다녀간 의료기관을 폐쇄하고 의료진을 자가 격리하는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병원 내 감염이 심각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악몽 때문에 의료진 격리 기준에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와 응급 혹은 중증환자를 놓쳐서 발생하는 피해를 따져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할 때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영석 고려대구로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병원 내 감염이 절대 다수였던 메르스보다는 약 76만 명을 전염시킨 신종플루와 비슷하다”며 “전국으로 감염이 확산될 가능성을 대비해 병상과 의료진 운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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