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갤러리 ‘작가 싹쓸이’ 득일까 독일까

김민 기자

입력 2020-02-24 03:00 수정 2020-02-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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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갤러리 ‘하우저&워스’… 조지 콘도-헨리 테일러 등 잇단 영입
갤러리-작가 윈윈 효과 기대에도… 일각 “작가 에이전시인가” 비판
일부 작가 작품값 급등뒤 급락도


미국 출신 화가 조지 콘도(62)는 현재 미술 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이다. 1984년 ‘가짜 거장(fake Old Masters)’ 시리즈를 선보인 뒤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작품이 616만 달러(약 74억 원)에 팔렸다. 미술사가 사이먼 베이커가 “램브란트가 그린 벅스 버니”라고 묘사했듯, 콘도의 작품은 대중적 소재를 피카소와 같은 거장의 필치로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지드래곤이 작품을 소장해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달 세계 3대 갤러리 가운데 하나인 하우저&워스가 콘도를 영입한다고 밝혀 미술계에 화제가 됐다. 1992년 스위스에서 출발한 하우저&워스는 미국, 영국, 홍콩에 지점을 두고 있으며 소속 작가만 91명에 달한다.

특히 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건 하우저&워스가 콘도뿐 아니라 헨리 테일러(62), 사이먼 리(53) 등 주목받는 작가를 대거 영입했다는 소식이었다. 며칠 새 비슷한 소식이 이어지자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로버타 스미스는 트위터에 “돈으로 원하는 작가를 다 영입한다면 그것이 예술 갤러리일까? 작가 에이전시일까?”라고 비판했다.

하우저&워스의 성장세는 무섭다. 2010년 소속 작가가 50명이 채 안 되던 이곳은 미술사를 강조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2014년 문을 연 영국 서머싯 지점은 농장을 개조해 정원과 레스토랑, 카페를 갖췄다.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듯, 바람도 쐬면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전략을 짠 것이다. 그 결과 2018년에는 15만2000명이 이곳을 찾았다. 2018년부터는 무크지 ‘Ursula’를 발간해 갤러리스트는 물론 영화감독, 시민운동가의 인터뷰도 소개한다. 미술품을 대놓고 판매하기보다는 ‘아트센터’의 역할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는 예술 작품의 가치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일반 상점과 성격이 다르다. 작가가 표방하는 가치를 갤러리가 알아보고 지원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19세기 인상파를 지원했던 딜러 뒤랑 뤼엘이 잘 알려진 예다.

“제가 초기에 알아본 작가가 잘 성장해서 국제적 대형 화랑으로 간다면, 쿨하게 보내고 남몰래 자축하는 게 제 꿈이에요.”

국제 미술전에 작가를 참여시킨 한 국내 갤러리 오너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A 씨의 말처럼 주목받는 작가가 대형 갤러리로 소속을 옮기는 현상을 최근 자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팝 아트, 미니멀리즘처럼 각기 다른 사조와 특정 갤러리가 함께 성장한 반면, 지금은 초대형 갤러리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하우저&워스 같은 초대형 갤러리는 영입 소식만으로도 작품 가격이 뛴다. 여기에 작품이 알려질 더 많은 기회, 작가들과의 교류, 새로운 컬렉터 확보뿐 아니라 연구·출판이 늘어나는 등 여러 이유로 대형 갤러리가 작가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2014년 대형 갤러리에 영입돼 가격이 치솟았던 ‘좀비 포멀리스트 작가’(토바 아우어바흐, 루시언 스미스, 오스카르 무리요)들은 몇 년 새 가격이 원점으로 떨어졌다. 컬렉터들이 작품의 가치보다는 갤러리의 이름을 보고 투자하듯 일시적으로 작품을 사들여 높은 가격이 계속 유지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본과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 좋은 작가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미술 관계자들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하려면 작가들은 갤러리를 선택할 때 부수적인 기회를 얼마나 제공하는지가 아니라 갤러리가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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