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주택’ 사업 활성화한다더니… 현장 “되레 규제만 늘어”

유원모 기자

입력 2020-02-24 03:00 수정 2020-02-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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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최대 500채’ 허용했지만 공기업 참여-공적임대 20% 등
단서조항 엄격해 진도 못 나가… 분상제 규제는 재건축보다 심해
정부 “난개발 막으려 공공성 강화”… 업계 “획일적 공공 주도 개발 강요”


이미 이주와 철거까지 마친 서울 강동구 상일동 벽산빌라 가로주택정비사업 현장. 기존 빌라 단지에 지하 2층 지상 12층 아파트 3개동을 짓는 사업으로, 100채 중 38채가 일반 분양 물량이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의 적용을 받게 됐다. 벽산빌라 가로주택조합 제공
정부가 주택 공급 대책으로 가로(街路)주택 사업 활성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규제만 더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규제를 풀어줬지만 엄격한 단서조항들로 인해 가로주택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2·16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며 공급 확대 방안으로 가로주택 규제 완화를 꺼내 들었다. 서울 시내의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은 각종 규제로 제한하고 있지만 소규모 정비사업인 가로주택은 도시재생과 주택 공급 측면에서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다음 달 초 발표 예정인 주택 공급 대책에도 준공업지역개발 규제 완화,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과 더불어 가로주택 확대가 주요 정책으로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12·16 대책에 따르면 가로주택의 층수 규제는 7층에서 15층으로 완화됐고, 사업시행면적도 기존 1만 m²에서 2만 m²로 늘어나 최대 500채 규모까지 지을 수 있게 됐다. 용적률 역시 법적상한선까지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에는 엄격한 단서조항이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기업이 참여하고, 공적임대주택을 20% 이상 의무적으로 배정해야 한다. 분양가상한제에서도 제외될 수 있도록 했지만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 산정, 공공이 손익을 부담하는 확정지분제를 도입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이처럼 공공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되다보니 결국 사업성이 떨어져 정부가 목표로 한 공급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의 한 가로주택 조합장은 “사업면적이나 분양가상한제 혜택을 보려면 무조건 임대주택 비율을 20%로 늘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분양 가구 수를 줄이고, 가구당 면적을 늘리는 식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규제가 더 늘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가로주택의 사업면적이 1만 m² 이상일 경우 지구단위계획 수립과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심의를 의무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무작정 규제를 풀어줄 경우 난개발 우려가 있어 공공의 참여를 강화시킨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서용식 수목건축 대표는 “다양한 도시재생 차원에서 가로주택을 장려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대책들은 민간의 창의성은 억압하고, 획일적인 공공 주도의 개발을 강요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보다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는 경우도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올해 4월 29일까지 입주자 모집공고(일반분양)를 진행한 조합에 한해 적용을 유예했는데 재건축·재개발에만 적용되고, 가로주택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로주택은 비교적 소규모이고, 사업기간이 빠르다는 점에서 유예 규정을 두지 않았다”며 “분양가상한제를 피하려면 일반분양을 30채 이하로 조정하거나 LH, SH 등 공공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일반분양을 30채 이상으로 계획한 서울의 6군데 가로주택 사업장은 분양가상한제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다음 달 일반분양을 진행할 예정이던 이은길 서울 강동구 벽산빌라 가로주택조합장은 “일반분양만 4786채, 총 1만2032채가 분양되는 둔촌주공은 분양가상한제가 유예되는데, 일반분양 38채, 총 100채에 불과한 가로주택은 상한제 규제를 받게 됐다”며 “이미 이주·철거까지 했는데 사업계획을 어떻게 다시 세우냐”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 대책마저 규제 위주인 부동산 정책의 맹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수요 억제뿐 아니라 공급 활성화를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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