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심의낯선바람]‘감염 재난’에 노출된 사람들

동아일보

입력 2020-02-19 03:00 수정 2020-02-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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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공포

“하필이면 내가….”

2, 3차 감염을 일으켰던 3번 확진자(54·남)는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에 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증상, 수면장애를 호소했다.

코로나19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는 ‘감염 재난’이다. 사람들의 공포가 일반 재난 상황보다 클 수밖에 없다. 신종 감염병의 특성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이런 불안과 공포는 고스란히 타인을 향한다. 그 결과 우한인을, 중국인을, 나아가 동양인 전체를 감염원으로 몰아세웠다.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이런 현상을 ‘투사’라고 한다. 투사는 타인에게 죄의식, 불안, 공포의 원인을 돌리는 심리현상이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그랬다. 감염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의 신상이 털렸고 사람들은 해당 의료진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불안과 분노에도 순기능은 있다.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격리에 협조하고, 분노를 통해서 시스템이 개선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포가 과도해지면 공동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합리적인 대처를 하기 어려워진다. 감염자가 주변 시선 때문에 자신의 감염 사실을 숨기면 지역 사회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감염자는 어떨까. 격리된 자신의 상황에 갑갑함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입원 초기에는 “왜 하필 내가”라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다. 진단 결과를 부정하고 “검사 한 번으로 확신할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에 적응해 간다.

감염자들의 공통된 감정은 ‘죄책감’이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감염자의 동선을 파악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지만 감염자가 접촉했던 모두를 알기는 어렵다. 완쾌되고 나서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비난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지나친 불안과 공포로 적대감을 조장하는 것도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공동체를 파괴하고 같은 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될 수 있다.

hongeunsim@donga.com


▼ 과도한 정보는 불안감 증폭시켜 ▼

재난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는 흔한 반응이다. 이런 시기에는 종일 뉴스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19는 전파율은 높지만 다행히 치사율이 비교적 낮은 것으로 알려져 메르스 때보다는 불안감이 덜한 것 같다. 방역과 정신건강 시스템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도 공포심을 줄이는 데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내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과도한 정보 노출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 검증된 예방법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집중한다. 또 민간과 기관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과도하게 안심시키려는 것도, 지나치게 과잉 반응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정부는 실수와 결함까지 인정하면서 정직과 투명함을 유지하고 계속해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는 105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소속돼 있다. 평소에는 재난 상황을 대비하고 상황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사람들을 돕는다.

백종우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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