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배스… 골칫덩이를 보물로 바꾼 청년들

손효주 기자

입력 2020-02-05 03:00 수정 2020-0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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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産혁신, 바다에서 미래를 연다]동아일보-해양수산부 공동 기획

‘스타스테크’ 충남 당진 공장에서 직원들이 불가사리 추출물을 활용한 친환경 제설제 생산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스타스테크 제공
《국토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 바다 자원을 비롯한 수산 자원은 미래를 향한 기회다. 남다른 노력과 혁신으로 탁월한 성과를 거둔 어업, 양식, 유통, 수출 기업 등의 성공 사례를 통해 한국 수산업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한다.》


● 불가사리로 친환경 제설제 개발 ‘스타스테크’ 양승찬 대표

육군 포병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양승찬 상병(당시 22세·사진)에게 2017년 6월 기회가 찾아왔다. 현역 군인들이 창업 아이디어를 겨루는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 대회.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를 휴학 중이던 양 상병은 불가사리를 비장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불가사리 추출물을 제설제 보완 원료로 쓴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양 상병은 경기과학영재고 1학년 때 불가사리에서 다공성 구조체 추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연구하고 논문도 발표했는데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었다.

제설제는 눈을 녹이면서 염화이온을 방출한다. 이는 차량 부식, 콘크리트 파손, 가로수 등 식물 피해, 호흡기 질환 등 각종 부작용의 원인이 된다. 불가사리 추출물은 골칫거리인 염화이온을 흡착한다. 제설제에 불가사리 추출물을 넣으면 부식방지제 성능이 개선되면서 부식률이 크게 감소한다.

양 상병 팀은 이 아이디어로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 상위 10개 팀 안에 들었다. 그해 11월엔 일반인도 참가하는 본선 대회격인 ‘도전! K-스타트업’에서 국방부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2017년 12월 초 전역과 동시에 불가사리 추출물을 활용한 친환경 제설제를 만드는 ‘스타스테크’를 창업해 양 대표가 됐다. 그는 졸업도 하기 전에 창업부터 한 이유에 대해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하루라도 빨리 사업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업은 시작하자마자 ‘폭풍 성장’했다. 정부는 조달청을 통해 친환경 제품에 한해 제설제를 구매한다. 스타스테크 제설제 ‘에코스트원(ECO-ST1)’의 현재 조달 시장 점유율은 25%가량이나 된다. 양 대표는 “타 친환경 제설제 업체 제품은 부식률이 20∼30%인 반면 스타스테크 제품 부식률은 0.8%에 불과하다. 물보다 더 부식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스타스테크는 이에 더해 연간 100억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해양 폐기물 불가사리를 수협에서 무상 공급받아 생산 단가도 줄였다. ‘바다의 해적’으로 불릴 정도로 어민들이 기피하는 불가사리가 양 대표에겐 ‘바다의 보물’이 됐다.

스타스테크는 창업 다음 해인 2018년 6억 원 매출을 시작으로 지난해 매출이 30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100억 원 달성이 목표다. 이를 위해 이달 중 미국, 캐나다 등 북미시장 온라인 판매를 시작으로 터키 중국 일본까지 올해 안에 수출국을 5개국으로 늘린다는 것이 양 대표의 계획이다.눈이 많이 와 제설제 판매의 가장 큰 시장이 될 러시아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양 대표는 “불가사리에서 추출한 콜라겐을 이용한 화장품, 액상 비료 등으로 제품 라인업을 확대해 글로벌 환경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특히 친환경 제설제 분야에서는 세계 1위 기업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배스 추출물로 반려동물 식품 만드는 ‘밸리스’ 서정남 대표

반려동물 식품 기업 ‘밸리스’ 직원들이 경기 남양주 공장에서 배스에서 타우린 등 영양성분을 추출하기에 앞서 배스를 손질하고 있다. KBS1TV ‘나는 농부다3’ 화면 캡처
민물에 사는 외래 어종 배스는 대표적인 생태계 교란종이다. 토종 물고기 씨를 말리는 탓에 ‘생태계의 폭군’으로 불린다.

퇴치 1순위로 꼽히는 배스가 ‘밸리스’ 서정남 대표(28·사진)에겐 ‘황금알을 낳는 물고기’가 되고 있다. 밸리스는 영양제, 사료, 간식 등 반려동물 식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기업. 밸리스 제품엔 배스에서 추출한 타우린과 오메가3가 들어간다. 특히 타우린을 자체 생성하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타우린이 들어간 식품은 면역력 강화 등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

서 대표가 ‘골칫거리’ 배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건 2016년. 생태계 교란종을 다룬 다큐멘터리 한 편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당시 서일대 창업동아리 소속 대학생이던 그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자’는 큰 목표를 세워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를 구체화할 만한 아이템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서 대표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배스 등 생태계 교란종이 영양학적 가치가 높은데도 폐기되는 등 활용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저거구나’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도 배스에 타우린과 오메가3가 풍부하다는 사실에 주목해 과거 ‘배스 어묵’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생태계 교란종이 원료여서 먹기 찜찜하다”는 선입견에 막혀 대중화에 실패했다.

서 대표는 배스 추출물을 반려동물 식품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1000만 명에 이른다. 영양성분을 강화한 반려동물 식품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막대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서 대표는 “배스 추출물을 활용한 영양가 높은 식품을 만들면 국내 반려동물 식품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수입 제품과 겨뤄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현재 연간 배스 50∼100t을 활용하고 있다. 각 지자체가 어민들에게서 수매하는 배스를 무료로 공급받는다. 사업 시작 당시 배스가 뭔지도, 어디서 구해야 할지도 몰라 낚시터를 배회하던 대학생은 이제 자타 공인 배스 전문가가 됐다.

배스의 유효성분만 추출하는 자체 추출법과 함께 타우린과 오메가3의 흡수율을 높이는 공법도 개발했다. 그는 “배스 1kg당 부가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 중”이라고 했다.

서 대표의 목표는 배스 외의 다른 생태계 교란종도 업사이클링(up-cycling)하는 것. 2018년 현재 환경부가 고시한 생태계 교란종은 21종이다. 그는 “해외 수출 시장을 개척해 한국을 대표하는 반려동물 식품회사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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