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부작용 크고 위헌 소지”… 盧정부때 반발 거세 접은 카드

김호경 기자 , 한상준 기자 , 김예지 기자

입력 2020-01-16 03:00 수정 2020-0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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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매매 허가제’ 논란]강기정 수석 발언에 시장 출렁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고강도 부동산 추가 대책을 예고한 15일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내 공인주액업소 앞에서 시민이 매물 가격표를 살펴보고 있다. 홍진환 지가 jean@donga.com
정부의 12·16부동산대책이 나온 지 한 달 만인 15일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매매 허가제를 언급하고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고강도 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강 수석이 이날 라디오에서 언급한 ‘매매 허가제’는 주택을 사고팔 때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하는 일명 ‘주택거래 허가제’를 가리킨다. ‘특정 지역’을 언급한 것과 결부해 보면 ‘서울 강남으로 이사를 가려면 허가를 받으라’는 말로 요약된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토지공개념’ 도입 방침에 따라 주택 거래에 대한 매매 허가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제도화하지 못했다.


○ “위헌 소지 있고 시장 부작용 커”

주택거래 허가제가 도입된다면 일부 투기지역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원칙적으로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만 허용하되 6개월 내 기존 주택을 매각하거나 근무지 이전, 질병 치료 등 불가피한 사유가 인정될 때에만 1주택자 이상의 주택 구입을 허용하는 식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없는 상태지만 시장에서는 개인의 재산권은 물론이고 거주 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반발이 크게 나왔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사회주의로 가자는 거냐”, “허가제로도 집값이 안 잡히면 나중에 부동산 국유화하겠다는 거냐” 등 황당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명백하게 위헌”이라며 “법의 기본원리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데 그 한 축인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토지의 경우 식량 등 여러 중요한 문제와 연관돼 있어 주택과는 다르다”며 “주택매매 허가제 기준을 액수로 어떻게 제한하든 그 범위가 넓으면 위헌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희범 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은 “그 내용이 어떻게 형성될지에 따라 위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고 투기적 수요만을 제한적으로 규제하는 경우라면 위헌으로까지 볼 수는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는 “분양권 전매 제한 이후 ‘떴다방’을 통한 거래가 이뤄진 것처럼 수요가 있는데 거래를 막으면 암거래가 횡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여당에서조차 “너무 나갔다”

이날 강 수석과 김 실장의 발언을 두고 야당은 물론이고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에서조차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당과 조율도 안 된 데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이야기가 나와 의아하다”고 했다. 한 중진 의원도 “대통령의 강한 의지 표명이 있었다고 해도 총선을 앞두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정책을 자꾸 흘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투기 억제 공약을 발표한 정의당 관계자조차 “(시장에서) 수용이 될까 싶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고집해서 강남 포함 서울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다른 지역 집값은 급락하게 만들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전 정부 탓을 하며 반시장, 반헌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정부 부처에서는 ‘추가 대책은 시기상조’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강 수석의 발언 이후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서울 집값은 안정세를 회복하고 있다. 강남4구를 포함해 서울은 모두 10월 이전 수준으로 상승세가 둔화됐다”고 밝혔다. 10일 국토교통부의 보도계획을 사칭한 황당한 글에 공교롭게도 주택거래 허가제가 들어있었는데 당시 국토부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수사 의뢰하는 등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전날까지도 “모니터링을 하다가 이상 징후가 나오면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 대출규제 9억 원 이하까지 확대될 수도


김 실장은 이날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전격적’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향후 대책은 12·16대책처럼 시장이 예상하지 못하는 시점에 강력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의미다.

내놓을 만한 대책으로는 자금조달계획서와 증빙서류 제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국토부는 올해 3월부터 투기과열지구 내 9억 원 초과 주택을 구입할 때 자금조달계획서와 본인 예금 잔액 등 각종 금융자산의 세부 명세를 증빙하는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시가 9억 원이 넘는 고가주택에 대해서는 사실상 매매 허가제에 준하는 정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출규제가 강화될 수도 있다. 12·16대책에 따라 시가 9억 원 초과 주택은 9억 원 초과분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기존 40%에서 20%로 낮아졌고, 15억 원 초과 주택은 담보대출을 아예 금지했다. 이를 9억 원 이하까지 확대해 대출을 통한 주택 구입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전셋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월세 실거래 신고제와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규제하면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단기적으로 가격이 안정될 수는 있다”며 “하지만 그런다고 실수요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냐. 결국 위축됐던 수요가 나중에 몰려 가격이 다시 급등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한상준·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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