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부진은 10년 만에 처음”…깊어지는 화학업계 시름

뉴스1

입력 2020-01-14 10:44 수정 2020-01-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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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틸렌 © News1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인 에틸렌 가격이 하락하면서 국내 화학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는 없는 이중고(二重苦)를 겪으며 설비를 운영할수록 적자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어서 화학업계의 장기 침체가 우려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1월 둘째주 에틸렌 가격은 톤당 775달러로, 호황을 맞았던 2018년 3분기 평균 가격(1240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톤당 700달러 초반을 지속한 에틸렌 가격은 1000~1100달러를 오갔던 2018년보다 300달러 이상 낮다.

화학사 실적의 핵심인 에틸렌 스프레드(제품 가격에서 원재료 가격을 뺀 것)는 1월 첫째주 155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4분기 평균인 169달러보다 더 낮아졌다. 업계는 에틸렌의 손익분기점을 톤당 250달러로 본다. 공장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이야기다. 1월 둘째주는 215달러로 잠시 반등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 이하다.

◇미국 셰일혁명 여파에 美-中 무역전쟁도 겹쳐…업황 반등 난망

석유제품인 납사를 분해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기초 유분인 에틸렌은 ‘화학산업의 쌀’로 불린다. 이 에틸렌을 가공해 폴리에틸렌(PE) 등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과 합성수지, 합성섬유 등을 만들 수 있기에 원료인 에틸렌 가격은 화학사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18년 화학업계의 유례없는 호황은 이런 에틸렌 가격의 높은 스프레드 덕분이었는데, 이젠 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인한 여파다. 값싼 셰일가스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여기에서 뽑아낸 저렴한 에틸렌의 공급량이 급증했고, 결국 글로벌 에틸렌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여기다 미·중 무역분쟁과 중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까지 겹쳐 화학제품 가격은 더욱 하락했다.

에틸렌 가격 하락은 국내 화학사들의 실적에도 직격탄이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에틸렌 제품의 영향이 크다고 분류되는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을 1565억원으로 예상했다. 전 분기보다 50% 감소한 수치다. 이미 국내 주요 화학사들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반토막이 난 점을 고려하면 회복이 더딘 모양새다.

문제는 앞으로 더욱 큰 ‘공급 충격’이 임박했다는 점이다. 업계는 올해 1분기까지 전세계 주요 국가에서 총 950만톤 규모의 에틸렌 설비가 신규로 상업 가동을 시작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들 신규 증설 규모만 해도 지난해 세계 에틸렌 수요 증가분의 2.6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중 무역분쟁 완화 기조에 따른 구매심리 개선으로 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는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글로벌 공급 증가세는 업황 개선을 억누를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이란 분쟁 등 수요 충격으로 이어질 요소들도 남아있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로서는 대형 크래커들이 가동률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시황이 하락하거나, 미중 무역분쟁이 관세 연기가 아닌 철폐돼 수요 급반등이 있어야만 시황이 반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화학사는 감산…“에틸렌 영향 적은 제품군 생산으로 돌파”

당장 마이너스(-) 수익을 내고 있는 화학사들은 감산에 나섰다. 국내 주요 화학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가동률을 90%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기업들이 물량 조절을 위해 감산한 적은 있지만, 국내 화학사들이 업황을 이유로 감산하는 건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기조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셰일 혁명으로 인해 낮은 가격으로 원유를 조달할 수 있는 미국은 화학 설비의 신규 증설도 지속할 것이고, 미국보다 원가 경쟁력이 낮은 한국 등 아시아 지역 화학사들은 계속 낮은 채산성으로 설비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평균 에틸렌 스프레드 추정치를 기존 톤당 353달러에서 195달러로 45% 대폭 낮추기도 했다.

이렇게 업황이 얼어붙는 상황에선 에틸렌이 아닌 다른 화학제품으로 제품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한 화학사 관계자는 “팔수록 손해인 지금같은 업황은 최근 10년 동안 처음있는 일”이라며 “고부가가치 플라스틱 제품, 합성고무 등 에틸렌의 영향을 덜 받는 제품군의 생산을 통해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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